피부색깔=꿀색 #02.[Interview] 두 개의 나라 그리고 전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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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도 터놓지 못하는 얘기를 나만 보는 일기장에 적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하얀 종이를 보자 몇 번이나 펜을 들썩이면서 망설였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임을 그때 알았다. <피부색깔=꿀색>은 5살 때 벨기에로 입양된 한국인 전정식(융 헤넨)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매우 솔직한 영화다. 동명의 만화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에 그의 과거와 현재의 실사가 스며들어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가 융합 된 작품이 완성됐다. 작품은 입양아에 대해 우리가 흔히 가지는 비극적인 시선을 거둬내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끝없이 헤맸던 그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세상을 비난하거나 자신의 운명을 슬픔으로 덧칠하지 않고 모나고 아픈 것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그의 이야기에는 함부로 쓰기 힘든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만 했다. <피부색깔=꿀색> 한국 개봉을 앞두고 3번째로 한국을 찾았다는 감독 전정식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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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피부색깔=꿀색>의 작가이자 동명의 영화를 연출한 전정식 감독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는 것은 모든 예술가에게 기쁜 일이지만 <피부색깔=꿀색>의 한국 개봉은 굉장히 남다른 의미일 것 같다.

한국인의 긍정적인 반응에 놀랐다. 요즘 인기 있는 K-POP이나 드라마 같은 주제를 다루지 않고 한국의 어두운 이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도 응원과 성원을 보내주어 굉장히 감사하다.

 

<피부색깔=꿀색>은 입양아였던 자신의 이야기를 굉장히 솔직하게 담은 작품이다. 영화의 원작이기도 한 동명의 만화 이외에는 아직 국내에 번역 된 작품은 없지만, 이전에는 다른 스타일의 작업을 해왔다고 들었다.

오랜 시간 동안 만화가로 활동하면서 많은 작품을 그렸다. 이전 작품에서는 굉장히 화려한 색깔과 스타일을 고수했다. 하지만 다른 스타일이었어도 그때 역시 <피부색깔=꿀색>과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공동 연출인 로랑 브왈로의 제안으로 <피부색깔=꿀색>의 영화화를 결심했다. 그저 제안만으로는 마음이 동하지 않았을텐데.

학교에서 애니메이션 공부를 하긴 했었지만 나는 계속 만화가로 활동해왔고, <피부색깔=꿀색>은 영화로 만들겠다고 생각했던 작품은 아니었다. 만화 <피부색깔=꿀색> 1권을 읽고 내가 한국에 갈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로랑 브왈로가 한국에 함께 방문할 것을 제안했다. 한국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제안이 흥미로웠다. 그렇게 뜻을 모은 우리가 처음 기획했던 것은 한국에서의 여정을 TV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촬영을 진행해보니 작업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다. 곧 장편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만화와 영화는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작업이다. 영화는 당신에게 어떤 작업이었나.

만화는 혼자 앉아서 그려도 되지만 영화는 한편을 위해서 백 명이 넘는 스태프가 함께 일한다. 혼자 작업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나에게 공동으로 일한다는 것은 굉장히 다른 방식의 작업이었다. 금전적인 부분부터 촬영까지 모든 일을 위해 항상 의논을 하는 것과 함께 제작하는 사람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분명 다른 매체라고해도 하나로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술적인 측면에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차이는 느끼지 않았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만화와 애니메이션 작업을 이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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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 많고 피부색깔은 꿀색인 아이. 입양서류에 적힌 그 말이 자신을 특별한 아이로 생각하게끔 만들었다고 감독은 말한다.

 

공동연출인 로랑 브왈로와 작품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을 것 같다. 서로 나아가려는 방향이 다를 때는 어떤 식으로 조율해 왔나.

싸워서 거의 내가 이겼다. 농담이다. (웃음) 이 영화는 나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만화를 영화화 했다. 그래서 일정부분은 내 의견을 따를 이유가 충분하다고 그와 나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피부색깔=꿀색>은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이 융합 된 작품이다. 무언가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특별히 고려했던 부분이 있었나.

작품은 <토이스토리>와 같은 CG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굉장히 고전적인 느낌을 내고 싶어서 2D 애니메이션과 비슷한 분위기로 다시 이미지화 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굉장히 복잡한 작업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것이 힘들기도 했다.

 

힘들다고 했지만 애니메이션에 과거와 현재의 실사가 매끄럽게 연결된다. ‘자연스러움’을 갖추기까지 많은 과정이 있었겠다.

영화는 한편이지만 굉장히 많은 편집본이 있다. (웃음) 조각을 만드는 것과 똑같았다. 부자연스러운 것들을 하나씩 쳐내면서 가장 자연스러운 걸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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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융의 어린 시절 모습과 성장기 그리고 현재를 넘나들며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영화 음악을 작곡가인 당신의 딸이 맡았다고 들었다. 딸과의 작업은 어땠나.

어떤 아빠가 자기 딸과 함께 작업하는 기회를 행운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작업이 쉽지는 않았다. 프로듀서와 나 그리고 딸, 우리가 어떤 관계라도 모두 프로이기 때문에 서로의 의견을 조율해나가는 것은 어려웠다. 하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시각을 책임지는 사람은 감독 하나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 부분 의견조율에 있어서 감독의 의견을 지켜나가려고 노력했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해외입양아에 대한 작품이기도 하다. 보통 입양아들의 삶을 다루는 작품들은 고난이나 슬픔 등이 강조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때때로 신파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피부색깔=꿀색>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슬픔을 객관화해서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물을 불쌍하게 그리거나 영화를 통해 불평하고 싶지 않았다. 어렵고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충분히 나를 고결하게 지켜낼 수 있다. 영화에는 비극이 아닌, 무언가를 다시 재정립하는 그런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전 세계 80여개 영화제에 초청돼 23차례 수상 했다. 수상 횟수가 작품의 가치를 말해주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자신의 진정성이 국경이나 문화와 상관없이 통했다는 점에 누구보다 놀라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물론이다. 누군가에게 다가갈 때는 진실 됨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통해서 나는 나의 진짜 이야기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솔직하게. 그렇게 이야기하는 방법이 영화의 성공을 좌우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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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어린시절을 그리는 전정식. 그림은 혼란스러운 시절을 보냈던 그에게 유일한 도피처였다.

 

한국과 벨기에, 어느 곳에도 완벽히 혼합되지 않는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인정’으로 출구를 찾은 것 같았다. 인정에는 가족들의 사랑이 뒷받침 되어 있었다는 것이 작품에서 느껴진다. 가족들의 이야기가 상당부분인데 그들의 반응은 어떤가.

영화를 보고나서 어머니는 고맙다고 하시더라. 아버지는 우리가 스키여행 다녀온 얘기는 왜 넣지 않았냐고 물으셨다. 처음엔 아버지가 그런 이야기를 묻는 연유를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그때의 스키여행만큼 이 영화가 소중한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당신의 삶이 만화로 그리고 지금은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꿀색’이라는 단어가 있다. 지금 당신에게 ‘꿀색’이란 어떤 의미인가. 처음과 여전히 같은가.

내 입양서류에 쓰여 있던 그대로 처음과 같은 의미다. 내게 ‘꿀색’은 정체성을 찾는 것을 추구한다는 의미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앞으로도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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