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의 사실』 의외의 사실 인터뷰 : 소통과 관계에 관한 반짝이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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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와 의외의사실.

마루와 의외의사실.

 

개가 등장하는 만화, 개와 함께 사는 사람 이야기를 담은 만화는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다. 그중에서도 레진코믹스에 연재되고 있는 『마루의 사실』은 매우 특별한 웹툰이다. 그 점은 조심스럽게 장담할 수 있다. 예민하면서도 무덤덤하며 예의 바른 개 한 마리, 그리고 그 개와 함께 일상을 공유하며 흘려보내는 순간들을 이토록 섬세하게 잡아내는 작품이 또 있을까 싶다. 마치 그 순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특별하게 기억하려는 것처럼. 이들의 이야기는 인간과 반려견의 이야기이자, 소통과 관계에 관한 반짝이는 통찰이기도 하다.
‘의외의 사실’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김준 작가는 웹툰에서는 초짜 신인이다. 그러나 그녀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10편이 넘는 애니메이션을 연출했으며, 국내외 영화제에서 다수의 수상경력을 지닌 애니메이터다. 또한 2008년부터 해마다 개인전을 열고 있는 일러스트 작가이기도 하다.
마루가 그렇게도 좋아한다는, 북촌의 ‘카페 공드리’에서 김준 작가와 마주앉았다. 무척이나 조용하고 느릿한 말투, 수줍은 웃음, 눈동자를 굴리며 대답할 말을 떠올리는 모습 등, 그녀는 작품 속의 본인보다는 오히려 마루와 꼭 닮아 있었다.

 

*김준 작가의 자세한 활동내용은 홈페이지블로그에서 살펴볼 수 있다.

 

펜네임이자 블로그 이름인 ‘의외의 사실’은 어느 소설 제목에서 따왔다고 들었다.
영국 소설가 캐서린 맨스필드의 단편 제목이다. 애니메이션 시작할 때 사업자등록을 해놓으면 나중에 무슨 일을 하기 좋다는 말을 듣고, 이름을 뭐로 정할까 하다가 마침 읽고 있던 단편소설집에서 골랐다.

 

2003년 3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 『내 친한 친구와의 가벼운 친밀감』으로 데뷔했다. 대학 때 전공(국어교육과)은 애니메이션과 전혀 상관이 없던데 어쩌다 옆길로 샌 건가?
대학 졸업하고 나서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갔는데, 『내 친한 친구와의 가벼운 친밀감』은 졸업 작품으로 만든 거다. 국어교육과는 점수 맞춰서 간 게 아니고 가고 싶어서 갔다. 중고등학교 때 국어나 문학시간을 좋아했고 책 읽는 것도 좋아했다. 3,4학년이 되어 진로를 고민하게 됐는데, 국어교육과니까 다른 거 안 하면 임용고시 준비를 해야 하지 않나. 임용고시 준비반에 한두 번 들어갔는데 이거는 진짜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그러다 갑자기 애니메이션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단 말인가?
원래 뭘 계획 없이 갑자기 결정하는 성향이 있어서.(웃음) 그래서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갔다. 그 이전까지 그림은 재미로만 그렸고,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상태였다. 그냥 그림 좋아하고 이야기 좋아하다보니 애니메이션과 연결된 것 같다.

 

그럼 아카데믹하게 그림을 배운 적은 없는 건가?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전에 미술학원에 잠시 다녔다. 그림을 많이 그려보기 전에 애니메이션 작업을 먼저 해서, 별개의 일러스트를 그리기 시작한 건 2002년쯤부터다. 그때는 사람들 많은 공간을 그리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카페를 돌아다니면서 그린 그림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게 재밌어서 맨날 그렸다. 나중에 그 그림들을 모아서 전시회를 하기도 했다. 책상 앞이 아니라 실제 공간에서 대상을 보면서, 혼자 오랫동안 앉아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은 카페가 유일하다. 그림을 시작할 때 다른 사람 그림을 보고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사물이나 대상을 보고 그리는 게 자기 그림체를 만드는데 좋은 훈련인 것 같다.

 

마루의사실_까페그림 (3) 마루의사실_까페그림 (2)

의외의사실이 그린 카페 그림들.

의외의사실이 그린 카페 그림들.

 

 

애니메이션 작업은 주로 어떤 방식으로 하나?
드로잉이다. 디지털 작업도 하지만 대부분 종이에 손으로 그린다. 상업 애니메이션 같은 스타일은 아니다. 분명한 사건이나 내러티브 없이, 아파트나 카페 같은 공간에 대한 느낌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작업을 많이 했다. 웹툰은 컴퓨터로 그린다. 웹툰 작업을 해본 적이 없다보니 자꾸 고치게 되니까. 손으로 그리면 대사를 조금씩 바꾼다거나 하는 수정작업이 너무 힘들더라.

 

마루의사실_애니메이션 일상적인 삶 이미지 마루의사실_애니메이션 도시에사는사람들의공간감 이미지 마루의사실_애니메이션 내친한친구와의가벼운친밀감 이미지

 

마루 이야기를 웹툰으로 그리게 된 계기가 있나?
마루를 데려온 이후 재미있는 일이 생기면 그걸 5~6컷의 짧은 이야기로 그려서 블로그에 올렸다. 그런데 애니메이션 같이 하는 친한 동생이 그걸 보고 웹툰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포털사이트에 올리다보면 정식 연재를 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마침 애니메이션 작업이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는데, 뭔가 새로운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애니메이션 작업을 다른 방식으로 하든가, 아니면 애니메이션이 아닌 다른 걸 해보든가.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다음 ‘웹툰리그’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정식 연재 기회가 왔다.

 

그럼 웹툰 작가로서는 초보인 셈이니 애로사항도 있겠다.
연재 전에는 웹툰을 잘 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사실 연재가 힘들다. 이런 식으로 마감이 있는 작업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애니메이션은 한 편에 1년 가까이 걸릴 정도로 느린 호흡으로 작업을 한다. 그런데 웹툰은 일주일에 하나씩 마감하려니 가끔은 진짜 쫓기는 느낌이다. 숨 막히게 쫓기는 느낌. 할 이야기가 없다기보다는 그 이야기에 맞는 디테일한 상황이 안 나온다거나, 아니면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때. 빨리 그만두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아주 가끔은 든다.(웃음) 강아지 관련 광고작업 의뢰가 들어온 적이 한 번 있는데, 연재 초반에 헐떡헐떡 하고 있을 때라 안 한다고 하긴 했는데… 돈을 진짜 많이 주더라.(웃음) 이런 걸 한 번 하기 시작하면 벗어나기 힘들겠구나, 그래서 너무 많이 하다보면 작품에 소홀해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지금은 『마루의 사실』에 전념하고 있는 상황인가?
그렇다. 다른 한편으로는 재미있기도 하다. 나는 애니메이션을 하다 보니 자꾸 비교하게 되는데, 두 분야가 너무 다르니까. 내가 했던 단편 애니메이션들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장르는 아니다. 그런데 웹툰은 훨씬 폭넓은 사람들이 보게 되니까 느낌이 다르다. 이렇게까지 전념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요즘은 『마루의 사실』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고 있다.

 

고정수입이기도 하니까.(웃음)
맞다. 애니메이션으로 고정수입이 생긴다는 게 참 힘드니까.(웃음)

 

몇 화까지 연재할지 대략적인 완결시기를 정해놓은 건가?
정해져 있지는 않다. 레진코믹스 측과 끝맺음에 대해 이야기한 것도 없고. 그런데 연재를 시작하면서 다른 웹툰들도 보게 됐는데, 생활만화 하시는 분들은 되게 오래 하는 경우도 있더라. 나는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고, 적당한 시기에 끝내려고 생각하고 있다.

 

이 동네(종로구 계동)에는 처음 와봤는데 이렇게 오밀조밀한 거리인 줄 몰랐다. 여기서 개 데리고 돌아다니면 눈에 안 띌 수가 없겠다. 11화에서 ‘마루 때문에 자꾸 사람들과의 관계가 생긴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좁은 동네라서 매일 오가는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다 안다. 그러던 차에 강아지까지 데리고 다니니까.(웃음) 아파트라면 개를 키우더라도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 거는 경우가 드문데, 여기는 골목도 좁고 해서 꼭 토박이가 아니라도 서로 쉽게 말을 거는 거 같다. 사실 초반에는 그런 게 불편하기도 했다. 도시에서 오래 살다보니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주목받지 않고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는데, 사람들을 자꾸 알게 되고, 보고 또 보고 해야 되니까. 지금은 그 단계를 넘어서 익숙해진 거 같다.

 

마루의사실_마루 (5)

 

마루 때문에 생활 자체가 많이 바뀌었을 것 같다.
생각보다 너무 많이 바뀌었다. 개를 여러 번 키워봤지만 혼자 키우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가족들이 많은 집에서 키우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완전히 1:1의 관계니까. 개도 나만 보고, 모든 게 나한테 달려있으니까. 게다가 내가 혼자 살다 보니 뭔가 사람 한 명 같이 사는 것만큼 사생활이 없어지는 느낌이 든다.(웃음) 누가 늘 보고 있고, 그만큼 신경 써줘야 하고. 처음에는 기존에 유지해오던 생활의 변화가 너무 커서 받아들이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지금까지 키웠던 개들과 비교했을 때 마루가 유별난 편인가?
그런 편이다. 너무 조용하고 예민하다고 할까. 항상 행동하기 전에 상황을 살피고.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장난감도 안 좋아하고, 뭘 던져도 두세 번 쫓아가다 관둔다. 뭘 물어뜯는 일도 없고. 좋아하는 건 오로지 산책이다. 그리고 사람에 대해 굉장히 무심하다.(웃음) 사람들한테 막 안기지는 않는데,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 관찰하는 걸 좋아한다. 이런 카페테라스에 오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고개와 눈동자만 돌리면서 계속 앉아있을 수 있다.

 

마루를 만난 적은 없지만 왠지 주인과 여러 모로 닮았을 것 같은데.
사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그런 말 굉장히 많이 듣는다.(웃음) 외모도 성격도 비슷하다고.

 

마루의사실_마루 (2)

 

개 한 마리에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나 싶어서 신기하기도 하다.
큰 그림을 그려놓고 ‘이런 걸 해야겠다’ 하고 시작한 게 아니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걸 그리다보니 계속 생각이 나는 것 같다. 한동안은 계속 할 수 있지 않을까.(웃음)

 

원래 관찰력이 뛰어난가, 아니면 작품을 하다 보니 세세한 부분까지 관찰하게 되는 건가?
원래 그런 면이 있으니까 그림을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지 않을까? 그런데 연재 시작할 때 전체 내용이나 방향을 미리 정하지는 않았지만, 강아지를 의인회하거나 강아지의 생각을 넘겨짚어서 글로 적는 건 피해야겠다는 나름의 원칙은 생각했다. 최대한 내 입장에서 관찰한 것을 그리려고 한다. 마루를 관찰해서 만화를 그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만화를 그리다보니 더 관찰하게 되는 거 같다.

 

그렇게까지 지켜보면서도 ‘이 개는 정말 모르겠다’ 싶은 부분이 있나?
그게 특정한 거라기보다 대부분을 모르는 상태로 사는 거 같다. 아예 밖으로 드러나는 감정은 알 수 있겠지만, 순간순간을 잘 모르니까. 뭘 원하는지, 혼자 있을 때 진짜 우울한지, 아니면 의외로 별 신경 안 쓰는지 등등. 관찰을 하면 할수록 그런 생각이 든다. 대부분을 모르는 상태로 같이 사는 거구나, 모르는 건 어쩔 수 없구나.

 

마루의사실_마루 (6)

하긴 사람끼리도 서로를 모르는데, 사람이 개를 100% 이해한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겠다.
그리고 개를 키우는 모든 사람이 공감할 것 같은데, 개가 표면적으로 요구하는 게 없다 해도, 사람은 개의 욕구를 완전히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상태로 늘 살아야 한다. 더 걷고 싶은데 산책을 끝내야 하고, 주인이 항상 옆에 있는 걸 좋아하는데 혼자 두고 나가야 하고. 개를 키우면 그런 점에 대한 죄책감은 기본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거 같다.

 

좀 이른 질문이긴 하지만 『마루의 사실』 이후의 계획이 있다면?
『마루의 사실』 단행본을 내려고 한다. 아직 계약은 안 했지만 이야기 중이다. 연재도 그랬지만 출판제의도 생각보다 빨리 들어왔다. 웹툰도 해보니까 재미있어서, 『마루의 사실』이 끝나도 다른 걸 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애니메이션 작업도 다시 하고 싶다. 앞서 말했지만 지금까지 내 애니메이션은 이미지가 흐르면서 풍경이나 공간의 느낌만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실사영화처럼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 안 나오다보니 대사도 없었다. 물론 웹툰도 뭔가 사건이 급박하게 전개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글로 이루어진 대사를 써보니 좋았다. 이런 경험이 앞으로의 애니메이션 작업에도 영향을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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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 소개

만화책더미를 주체 못해서 독립해서 사는 누나가 있다. 그 덕분에 중학교 때부터 만화 하나는 죽어라 하고, 죽어도 원 없을 정도로 보고 자랐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PAPER 에디터로 일했으며, 최근에는 박리다매 프리랜서로 목숨을 부지하는 중. 음악, 스포츠, 영화, 만화 등 쓰라면 쓰라는 대로 오지랖 넓게 쓴다.



댓글 4 개

  1. 의외의사실님 시선 따라가는걸 좋아합니다. 이글 우연히 읽었는데요. 작가님 생각, 방식 조금 더 알게된 것도 생겨서 재밌었습니다. 작업예정된 부분중엔 단행본 소식이 제일 눈에 들어왔구요. 여기 한 명 더 기다립니다.. 마루의사실 완결은 벌써 상상만 해도 허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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