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안토니오 알타리바 인터뷰 : 비행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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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글 안토니오 알타리바|그림 킴|길찾기|14,000원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글 안토니오 알타리바|그림 킴|길찾기|14,000원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 아버지는 자살했다.”
내 아버지는 2001년 5월 4일에 자살했다. 요양원 창문에서 몸을 던졌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자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창문을 뛰어넘어 하늘로 날아오른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일 때, 나는 그가 날아오르길 원했다고 생각했다. 유년기의 숨 막히는 시골 생활 속에서, 격동의 스페인 내전을 겪으며, 프랑스로 피난하며, 그리고 인생의 가장 우울한 시간을 보냈던 양로원에서도, 아버지는 계속 비상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90살에 추락사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90년 동안 천천히 비행하고 있었다. 아버지만의 예술적 비행이다.

 
지난 8월 14일, Bicof2014 초청작가인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의 시나리오 작가 안토니오 알타리바를 인터뷰했다. 이 작품은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전쟁의 투사로서, 사업가로서 살아온 한 남자의 90년 동안의 인생을 약 200쪽에 걸쳐 매우 객관적인 시선으로 고백한다.
한국이 처음이라는 그는 긴 비행을 마치고 13일 밤 도착했다. 여독을 풀 새도 없이 새벽까지 일을 하느라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오전 인터뷰가 피곤하게 느껴질 법도 했지만 그 반대였다. 질문보다 더 많은 것을 대답하는 그의 모습은 사뭇 진지했다. 작품을, 세상을 보는 그의 눈은 더없이 예리했다.

 


작품의 원제는 『비행의 예술(L’art de volar)』이지만 한국판의 제목은 전혀 다르다.
그렇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다.

 

한국판 제목이 작가 본인의 의도를 잘 살린 제목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런 것 같다. 유럽과 달리 한국은 책에 접근할 때의 방식이 더 직접적인 것 같다. 아나키즘은 유럽에서 있었던 운동이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다. ‘아나키스트’라는 단어는 유럽에서 직접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유럽은 더 은유적인 제목을 선호하지만, 한국에서는 책의 내용을 좀 더 설명했던 것 같다.

 

제목 뿐만이 아니다. 각 나라 버전의 표지 디자인도 제각각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브라질, 터키 등에서 출간됐다. 인쇄된 책의 번호가 일일이 적힌 한정판, 몇 가지 버전이 있는 스페인판 등도 있다.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각 나라별로 다양한 표지 디자인을 볼 수 있다.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각 나라별로 다양한 표지 디자인을 볼 수 있다.

 

 

책의 표지에 따라 각국의 독자에게 접근하고자 하는 방식이 크게 바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버전이 있는가.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한국판이 좋다. 일단 크기가 매우 적절하다. 프랑스판 같은 경우 너무 작았다. 한국판은 그 반대로 종이의 크기와 색감도 잘 살렸고, 특히 표지에 등장인물들이 배치된 것이 마음에 든다. 작품의 일러스트레이터 킴은 한국판을 선호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애착을 갖는 판본 역시 한국판본과 오리지널 판본이다. 한국의 출판사에게 감사한다.

 

여러 나라에서 소개되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처음부터 예상했는지.
이 책을 처음 출판할 때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나에겐 의미있는 작업이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라 예상해서 소수의 한정판만을 만들었다. 그러다 인터넷이나 평론 등에 소개되며 점점 좋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나에게 있어서 놀라운 경험이었다. 한편으로 아버지의 선물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작품 이야기를 해보자. 원작의 제목을 『비행의 예술』이라고 정한 까닭은 무엇인가.
나의 경우, 처음 이 책을 쓰기로 결심할 때부터 제목을 미리 정해두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다룬 책의 제목이 『비행의 예술』이라니, 내 태도가 시니컬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추구하고자 하는 삶을 비유하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제목은 없었다. 아버지는 평생을 자신을 추구하는 것을 향해 날아오르고자 했다. 도시, 자유, 사랑… 그러나 비상을 꿈꿀 때마다 추락하는 쓴맛을 봐야 했다. 마지막 비상은 달랐다. 아버지는 성공했다.

 

 

프랑스의 농장에서 행복하던 시절. 땅과 연결된 탯줄을 주목하자. 작가는 “어렸을 때 고향 마을에서는 몰랐던 정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프랑스의 농장에서 행복하던 시절. 땅과 연결된 탯줄을 주목하자. 작가는 “어렸을 때 고향 마을에서는 몰랐던 정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어머니 페트라와의 한 때

어머니 페트라와의 한 때

 

 

‘하늘을 날 만큼 행복한 기분’이라는 표현이 있다. 작품에서 ‘비행’은 행복을 치환하는 데 중요한 비유로 쓰인다. 그는 언제나 비행(행복)하려는 충동에 사로잡혀 있다. 그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그는 비상한다. 그리고 다시 추락을 반복한다.

행복은 영원하지 않다. 그렇기에 더욱 귀하다. 결국, 아버지는 정말 행복했을까.

 

 

각 단락의 표지에는 추락하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아버지는 단락의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아래로 내려가다가, 종국에는 바닥을 마주하게 된다.

각 단락의 표지에는 추락하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아버지는 단락의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아래로 내려가다가, 종국에는 바닥을 마주하게 된다.

 

의도적으로 행복을 비상으로 은유했다면 이 책이 더 슬프게 느껴진다. 아버지는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비상하지 못하고 추락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격차가 있다. 아버지 역시 그렇다. 언제나 이상향을 향해 ‘날아오르기’ 위해 노력하지만 항상 실패한다. 내 생각에 이 책은 우리 모두가 가진 그 격차를 건드렸기에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삶은 매우 강렬하고 극적이다. 그러나 독자는 그 삶을 이해한다.
이 책은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이다. 책의 첫 장에서 아버지는 자살한다. 그리고 긴 회상을 거쳐, 마지막엔 첫장면으로 돌아가게 된다. 나의 아버지는, 9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4층에서 떨어진 것이다.

 

사진4

 

 

이 장면도 인상깊다. 원근법을 비틀어 두 인물이 실제보다 더 멀어 보인다.
오른쪽의 인물은 종전 후 체제에 맹목적으로 순응한다. 단순히 지난날의 이상을 버리는 게 아닌, 열렬한 신봉자가 되는 것이다. 비상과 대비를 이루는 장면이다. 그는 맨홀 아래로 숨어버린다.전후에 전쟁 시절 동지를 만나는 일은 흔했다. 아버지에게서도 종종 일어나던 일이었다. 그들은 물론 서로를 알아보지만, 아는 척 하진 않는다. 그들과 다른 진영(아나키스트)이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그들이 서로를 알아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비상, 반지, 석탄 터널, 황금 비스킷 등, 이 작품에 다양한 은유가 있지만 전쟁과 이념에 관련한 은유는 특히 신랄하다.
나는 전쟁 이후 아버지가 어떻게 스페인으로 돌아왔을까 궁금했다. 40년 동안의 프랑코 독재 정부에 대한 모든 흔적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이 흔적들은 작품의 여기저기에 상징화했다. 전쟁의 기억과 파시즘의 흔적이다.

사진5


이 독수리(위 사진)는 정권의 상징이다. ‘하나, 제국, 자유(Una Grande Libre)’라는 슬로건 역시 그렇다. 독수리는 아버지의 눈을 뽑는다. 그는 독자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안보이니까 더 낫군’이라고 중얼거린다. 결국 어떤 의미에서 아버지는 눈이 멀어버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는 정치적 죽음을 맞이한다.

 

모든 은유를 직접 구상한 것인가.
그렇다. 나는 ‘비주얼 메타포(Visual Metaphor)’라고 부른다. 이는 만화가 가지는 고유한 언어다. 내면의 개인적이고 은밀한 것들을 꺼내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일러스트레이터인 킴은 작품의 은유를 위해 자신의 스타일인 리얼리티를 과감히 포기했다.

 

이 자리엔 킴이 없지만 그림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재료의 물성이 좋았다. 실제 작업은 컬러로 했는지.
흑백이다. 수채화 물감을 농도에 따라 변화를 준 것이다. 처음 선으로만 그려진 그림을 보았을 땐 차가운 느낌이었다. 물감을 써서 명암을 주자 느낌이 살아났다. 수채화는 자연스러운 느낌을 내기도 하지만 향수를 자극하는 재료이기도 하다.킴은 전통적인 스타일을 선호해서, 큰 화판에 펜과 붓으로 작업한다. 사실 이건 원본을 봐야한다. 그것은 정말 아름답다.

 

이 작품은 한국에서 청소년 유해매체로 선정됐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가. (관련기사)
그렇다. 한국의 많은 분들이 이 책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는지 변호하고자 노력 했다. 선정 사유는 에로티시즘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세계 어디서나 검열은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스페인에서도 검열이 있었나.
아니다. 오직 한국에서만 판정받았지만, 나중엔 그 검열을 철회했다. 그 과정에서 힘써준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린다(웃음).

 

다음으로 구상중인 작품이 있는가.
제목은『암살자인 나(Moi, Assassin)』이다. 주인공은 미술사 교수인데, 예술은 일종의 살해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백색 살해’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를 테면, 두 회사가 합병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은 지구 반대편의 많은 생명의 죽음을 초래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우리에게 정당하게 받아들여진다. 예술가가 작품에서 한 인물을 죽이는 것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 않은가.
정치는 그런 종류의 죽음을 정당화할 수 있다. 왜 사람들은 죽음을 무릎쓰면서까지 가난한 국가에서 부자 국가로 가기 위해 국경을 넘을까? 여기엔 국가간 국경을 인정하고 강화하는 상업적 계약이 있다. 이 계약은 어떤 나라들을 매우 가난하게 만든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경제가 굉장히 큰 살해행위다. 경제는 객관적 숫자를 내세우며 그 뒤에 있는 인간의 삶을 잊곤 한다. 우리는 그것을 아무런 책임이 없는 듯 제시한다. “그냥 제도일 뿐이에요” 라면서.
나는 작품 속 인물에 나를 투사하면서 세상에서 정당화된 모든 종류의 살해에 대해 분명히 보여주고자 한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 왜 검열됐는지 알겠다. 에로티시즘은 그냥 핑계인 것 같다.(웃음)

 

 

 

안토니오 알타리바 작가가 에이코믹스 앞으로 보내온 메시지 :

사진6

에이코믹스를 위하여.
제 작품에 관심을 가져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지적인 인터뷰는 저로 하여금 제 자신의 이야기/역사를 재발견 하도록 합니다.
에이코믹스와의 인터뷰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이미지에 담긴 이야기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투명한 시선보다 더 나은 것은 없습니다.

 

 

안토니오1

통역 조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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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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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개

  1.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잘 봤습니다. 좋은 작품이었어요…

    영화와 시도 좋아하지만 이 작품에는 만화의 힘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2.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재미있게 읽었는데 인터뷰를 보게 되어 반갑습니다.
    원제가 이었다니 또 다른 측면에서 보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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