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관계』 김인정 인터뷰 : “설득보다 공감”

1

 

『괜찮은 관계』 김인정 인터뷰

“사건과 배경은 모두 픽션, 인물의 감정은 논픽션”

 

인터뷰에서 본인도 이야기한 것처럼, 김인정 작가의 작품들은 성장의 테마를 품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평범한 여성들의 성장담. 꽃 같은 여대생들의 사랑을 그린 『꽃 같은 인생』이 그랬고, 여학교라는 계층화된 공간의 소름 돋는 생존투쟁을 담은 『더 퀸 : 침묵의 교실』(이하 『더 퀸』)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주인공들에게 성장이 꽤 근사한 것이라고 말해주지도, 눈부신 행복을 안겨주며 축하하지도 않는다. 그저 변화의 가능성을 확인한 시점에 툭 던져놓을 뿐. 그래서 김인정 작가의 작품에서 무엇보다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지점은, 불완전한 주인공이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다. 그리고 그녀가 레진코믹스에 연재 중인 『괜찮은 관계』는 섹스와 욕망, 사랑에 대해 정반대의 태도를 지닌, 그럼에도 서로 닮아 있는 두 여자의 이야기다.

 

 

김인정 오너캐

김인정발암작가의 오너캐. 여기 새로운 토끼가 등장했다!

 

 

 

 

사전조사를 하다가 상명대 만화학과 수석입학(!)이라는 눈부신 과거를 발견했다.

앗, 그런 게 어디에 나와 있지? (읏음)

 

 

구글을 탈탈 털어보니 어디선가 나오더라.(웃음)

사실 수석 입학이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아무래도 만화학과 전반적으로 상업만화보다는 프랑스 쪽 예술만화 같은 그림을 선호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입학 초기에 몇몇 친구들이 “수석이 대체 누구야?” 하면서 내 그림을 궁금해 하다가, 연습장에 그린 걸 보고 나서 실망한 적도 있었다.(웃음) 내 그림이 굉장히 상업적이니까. 학교를 다니면서 커리큘럼이 도움이 됐는지는 딱히 모르겠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그때는 기술이나 툴 사용법을 알려주기보다는 “작품을 완성해와!” 하고 툭 던져주는 수업이 대부분이었다. 그 대신 나와 비슷한 나이대, 비슷한 수준의 경쟁자들이 주위에 많다는 점은 좋았다.

 

 

졸업하고 나서 데뷔하기까지 과정이 그리 순탄치 않았다고 들었다.

원래 『윙크』에 연재하는 게 꿈이었다.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랐고, 내가 좋아했던 『궁』의 박소희 작가님, 『언플러그드 보이』의 천계영 작가님 같은 분들이 『윙크』를 통해 유명해졌으니까. 만화가에게 있어서 성공의 상징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근데 대학교 3학년 때 순정만화 출판사에 원고를 가져갔는데 반응이 좋지 않았다. 그림이 너무 예쁘지 않다든가, 순정만화에는 맞지 않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그림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내 그림이 순정만화 치고는 입체감이 있는 편이라서. 길고 날씬하게 그려야 하는데 그런 걸 잘 못한다.

 

 

2010년 한일 합작영화를 만화화한 『내 눈에 콩깍지』가 첫 작품이 됐다.

그전에 만화학과에서 졸업 작품을 내면서 그걸 포트폴리오 삼아 여러 출판사에 돌린 적이 있는데, 대원씨아이에서 연락이 왔다. 수련생처럼 트레이닝을 한번 해보자고, 유현 작가님의 『선녀강림』 한 권을 주면서 그걸 베껴오라고 했다.

 

 

거기서는 소년물 작가를 원했던 건가?

그렇다. 『아이즈』처럼 남성취향에 초점을 맞춘 만화를 원했던 거 같다. 나와 잘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중에 그만뒀는데, 다른 에이전시에서 연락을 받고 계약을 했고, 처음으로 받은 일이 『내 눈에 콩깍지』였다. 그런데 이것도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만화를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베스트 도전부터 다시 시작했고, 포털 연재로 이어지게 됐다. 『더 퀸』이 끝나갈 무렵 레진코믹스의 레진님이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셨다. 그분이 내 팬이라고 하시면서 계속 성의를 보여주셔서, 한 작품 정도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상한 게 『괜찮은 관계』다. 사실 그전까지는 마음 편히 연재처를 고를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두드리다 떨어지고, 두드리다 떨어지고를 반복하다보니 ‘내가 작가가 맞나?’ 싶은 생각도 들었고. 지금은 차기작을 낼 때의 두려움은 많이 사라졌다.

 

 

 

꽃같은인생

『꽃 같은 인생』의 네 여자 주인공. 왼쪽에서 두 번째가 바로 속터지는 여주인공 ‘여주’.

 

 

 

레진코믹스는 댓글기능이 없어서 모니터링이 쉽지 않은데, 전작들까지 포함해서 독자들이 가장 많이 보이는 반응이 뭔가?

그러게. 댓글이 없으니 뭔가 면벽수련을 하는 느낌이다.(웃음) 많이 듣는 말은 ‘빡친다’.(웃음) 등장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빡친다고. 요즘은 ‘발암작가’라고도 하더라.

 

 

그러고 보니 작품마다 보는 사람 속 터지게 하는 캐릭터가 한 명씩은 꼭 나온다.

대체로 주인공이 그렇다. 『괜찮은 관계』의 지원이가 그렇고, 『꽃 같은 인생』의 여주도 마찬가지다. 『더 퀸』의 정아도 사실 답답한 캐릭터였고.

 

 

그런데 독자들이 답답해하고 짜증내는 것도 작품이 몰입력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가끔 “네 주인공 짜증나”라는 말에 작가가 상처받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착한 독자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은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작가 분이 얼마나 힘드시겠어요”라는 댓글을 달아주신다. 그런데 난 그런 짜증난다는 반응이 되게 좋고 즐겁다. 더 욕해주셨으면 좋겠고(웃음), 이런 이미지로 계속 가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한다. 무반응이 제일 힘들다.

 

 

『괜찮은 관계』 1부 후기에 “지원의 감정이 이해가 안 돼서 힘들 때가 많았다”고 썼다. 그래서인지 지원이 답답하고 수동적인 사람이 된 계기가 자세히 등장하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독자들이 기대할 만한 충격적이고 드라마틱한 사건은 없었다.

듣고 보니 지원이에 대해서는 많이 안 풀었던 거 같다. 그런데 사실 보통사람이 그렇게 드라마틱하고 충격적인 사건을 일생에서 겪는 경우는 드물지 않을까? 또 내 작품에서는 그런 보통사람이 중요하기도 하다. 난 그런 사람이 좋다. 평범한 사람. 물론 캐릭터가 이해가 안 될 때는 힘들다. 『더 퀸』처럼 어두운 이야기를 할 때 더 힘들고. 그런데 나도 내 캐릭터를 다 알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모르면 모르는 만큼 묘사하는 게 좋은 거 같다.

 

 

괜찮은 관계 01

『괜찮은 관계』의 두 주인공. 정 반대의 고민을 안고 있지만 결국 지향하는 바는 같다.

 

 

 

현실에서는 아무리 충격적이고 기상천외한 사건이라 해도, 막상 그 일이 일어난 이유는 말도 안 되게 유치하거나 딱히 없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러니 결국 이런 괴리를 독자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느냐가 모든 작가의 숙제 같다.

맞다. 이유가 없다. 내 경우에는, 사건은 아무리 뜬금없더라도 그냥 만드는 편이다. 작품을 하면서 딱히 취재를 해본 적도 없다. 거의 다 내 경험에서 나왔고, 캐릭터들도 나에게서 분화된 아이들이다. 사건 자체는 특별한 게 아니라서 대충 빨리빨리 넘어가는데, 사실 별 거 없는 이야기다. 그 대신 감정선이 이해가 되도록 만들면 보는 분들도 이해하고 넘어가신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인데, ‘사건과 배경은 모두 픽션, 인물의 감정은 논픽션’이 내 모토다. 내가 직접 겪어본 바를 떠올리면서 감정을 리얼리티 있게 그리고, 사건이 실제로 있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따지지 않는다.

 

 

설득보다는 공감의 영역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공감에 가까운 거다. 설득을 하는 건 좀 어려운 거 같다.

 

 

그럼 작품 구성할 때, 전체적인 이야기의 틀보다는 인물의 감정이나 테마가 먼저 나오겠다.

맞다. 한 줄의 테마가 중심이다. 그래서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제일 많이 걸린다. 내 기준에서는 그렇게 하는 게 내 만화가 재미있어지는 지점인 거 같다. 이야기의 배경까지 논픽션이 된다면 다큐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지원은 욕망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욕망을 깨닫지 못한 것도 아니지만, 원하는 바를 확실히 말하지 못하는 캐릭터다. 부연설명을 덧붙인다면?

욕망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있지 않나. 내가 뭘 원하는지 말하기 싫어하고 창피해하고. 그런데 지금도 많은 평범한 여자들이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을까. 요즘 <마녀사냥> 같은 프로그램이 화제인데, 그러다보니 지원이 같은 사람들의 입지가 더 좁아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건데, 지금은 또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거 같아서. 그런 사람들이 “나는 내 욕망을 드러내는 게 부끄러워”라고 말하면 왠지 트렌드를 거스르는 사람,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으니까. 그런데 지원이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만큼 이 만화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수요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 하나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한류를 역수입하는 나라들의 정서와 맞지 않을까 하는 거다. 일본은 너무 개방적인 것 같고, 동남아 같은 보수적인 문화권이라면 공감을 많이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한나는 지원과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다. 특히 4화의 에피소드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프리섹스를 즐기지만, 집 앞에서 카섹스를 할지언정 남자를 집에 절대 들여놓지 않는다. 몸은 쉽게 섞으면서도 자신의 영역은 철저하게 지킨다는 느낌이다.

그걸 알아주셔서 감사하다! 말 그대로 그 사람에게는 몸이 더 쉬운 영역인 거지. 마음은 한 단계 더 안쪽에 있는 거고. 마음을 가두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지원이는 반대로 몸이 닫혀 있고 마음은 열려 있다. 처음에는 한나 편은 밝은 사랑이야기로 만들려고 했는데, 4화까지 해보고 나니 뭔가 납득이 안 되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짜증나는 사랑이야기가 되겠구나 하고 방향을 바꿨다. 또 지원이와 한나의 관계는 이 만화의 핵심이다. 서로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질투하는 한편, 서로의 결핍을 채워줄 수도 있는 관계로 만들고 싶었다.

 

 

예전 어디선가 “어떤 캐릭터든 작가가 보정하거나 결론짓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신의 주인공들을 늘 완결되지 않는다. 변화를 향해 한발자국을 내딛는 선에서 끝난다.

『꽃 같은 인생』 후기에 썼던 말이다. 내 만화의 인물들은 다들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가졌다. 그래서 내 만화를 성장물이라고 하는 PD님도 있다. 사람이 변하는 게 내가 제일 흥미 있어 하는 부분이다. 독자 분들도 좋아하시는 거 같고. 그 대신 결론이 나지 않고, 한 단계쯤 나아지는 정도다. 물론 그걸 못 따라오시는 분들은 못 보시기도 한다. 애가 완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나오니까, 그걸 지켜보는 게 되게 피곤한 일일 수도 있을 거다.

 

 

 

더 퀸

『더 퀸 : 침묵의 교실』중에서. 이 한 컷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지 독자들은, 안다.

 

 

 

인간관 같은 게 있는지?

사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게 내 지론인데(웃음) 작품에서는 꼭 변하게 만드는 거 같다. 만화니까.

 

 

삶이라는 게 단계적으로 나아지는 거라고 생각하나?

글쎄… 근데 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가겠냐는 질문을 받으면, 절대 안 간다고 말한다. 지금만큼 잘 살 자신이 없다. 지금 기억을 다 가지고 간다 해도 뭔가 흐트러질 거 같고. 그냥 점점 잘 살게 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후회는?

별로 안 하는 편이다. 원래 고민을 잘 안 한다.(웃음)

 

 

작품을 만들 때 어떤 공정이 제일 즐거운가?

연재 들어가기 전에 상상할 때.(웃음) 일에 들어가는 순간 힘들어진다. 데뷔 전에는 그림 그리는 게 가장 즐거웠는데 지금은 제일 재미가 없다. 스토리 작가로 전향할까 하는 고민을 해보긴 하는데, 그러면 내가 만족 못할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뉘앙스 그대로 표현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까.

 

 

3편의 작품을 거치면서 생기게 된 태도라든가 원칙 같은 게 있다면?

SNS를 많이 하지 말자? (웃음) 그리고 마감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거. 늦거나 휴재하면 마음이 되게 안 좋다. 어떻게든 마감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고, 그게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약속을 지킬 수 있느냐, 안정된 퀄리티를 낼 수 있느냐의 여부다. 보는 사람이 불안하지 않을 정도의 꾸준한 퀄리티, 대박을 치지는 못해도 완전히 망하지는 않게 마무리를 지을 수 있는 작가라는 안정감을 주는 것.

 

 

그러다 대박 칠 수도 있지 않나? (웃음)

나는 대박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웃음) 학교 때도 그렇게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상업적인 건 일종의 코드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을 거라고. 근데 사실 그게 아니지 않나. 타고난 감도 분명히 필요하고, 사람마다 성향이라는 게 있으니까. 이번 작품도 좀 밝고 유쾌하게 가리라 마음을 먹고 시작했는데 안 되더라. 나도 예쁘고 달달한 만화를 그리고는 싶은데 잘 할 수 없을 거 같다. 욕심도 없다. 지금보다 더 우울한 걸 그리고 싶기도 하고, 역사를 좋아해서 역사물도 해보고 싶다. 지금처럼 소소하게 하는 게 좋다. 일단 나는 지금이 너무 행복해서.(웃음)

 

 

 

 

공유하기

필진 소개

만화책더미를 주체 못해서 독립해서 사는 누나가 있다. 그 덕분에 중학교 때부터 만화 하나는 죽어라 하고, 죽어도 원 없을 정도로 보고 자랐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PAPER 에디터로 일했으며, 최근에는 박리다매 프리랜서로 목숨을 부지하는 중. 음악, 스포츠, 영화, 만화 등 쓰라면 쓰라는 대로 오지랖 넓게 쓴다.



댓글 1개

  1. 작가님! 괜찮은 관계 너무 재미있게 잘 보고 있어요♡
    감상을 남기고 싶어서 작가님 홈페이지가 있는지 찾으려던 참이었는데요!
    한국엔 아직 소극적인 여성들도 많으니까 지원이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을거구요.(저도ㅎㅎ)
    한나편도 지켜보고있는데 기대됩니다.
    항상 두근두근하며 연재날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있다는거 잊지 마세요~

댓글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