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촉구 #03 안노 모요코의 초기작,『지방이라는 옷을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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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노 모요코安野モヨコ의 초기작,

『지방이라는 옷을 입고脂肪という名の服を着て』

 

 

국내 기출간 작을 찾아보니 생각보다 꽤 다양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96년 『해피매니아』로 데뷔하여 현재까지, 건강에 문제가 있어도 일간지 연재만은 놓지 않는 정력적 활동을 해온 인기 만화가 안노 모요코가 국내에서 유명하지 않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니까. 문제는 그럼에도 볼 수 없다는 데 있다. 초기작품에 속하는 『트럼프!』 『해피매니아』 『꽃과 꿀벌』 『러브마스터X』 『젤리빈즈』 『젤리 인 더 메리고라운드』 등과 일본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지며 큰 인기를 끌었던 『워킹맨』, 평범한 만화가(여자)에서 일본 여성들이 동경하는 뷰티 멘토로 업그레이드하는 『뷰티마니아』, 『에반게리온』의 감독 안노 히데아키와 결혼한 후의 생활을 그린 부부코믹에세이 『감독부적격』, 한국의 특히 초중등 소녀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한 『슈가 슈가 룬』까지 적지 않은 수가 정식번역출간 되었지만 모든 작품이 품절, 혹은 절판 수순을 밟아 지금은 중고서적거래 사이트에서나 가끔 찾아볼 수 있는 정도다. 이런 역경을 뚫고(?) 그녀의 작품을 구해보거나 아니면 품절되기 전에 그녀의 작품을 만나본 운 좋은 독자들을 제외한다면 ‘안노 모요코’란 그럭저럭 눈에 띄는 활동을 했으며 그림을 예쁘게 그리는 순정만화가, 영화 『사쿠란』의 원작 만화가 정도로 비춰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 누군가에게는 ‘안노 히데아키의 부인’ 포지션으로만 인식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세계를 제대로 맛본 사람이라면 안노 모요코 만화의 매력을 슈에이샤 만화상을 수상한 안노 모요코 최고의 인기작 『슈가 슈가 룬』에서 찾지는 않을 것이다. 한주먹 너끈히 들어갈 것 같은 커다란 눈망울을 한 인물들은 더 이상 『슈가 슈가 룬』 속 꽃잎이 휘날리고 사랑의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세상에 살지 않는다. 직장동료의 업무태만에 폭발하고 울다가 생긴 눈가 주름은 5만 엔짜리 에센스로도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규한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게 된 걸까?’를 밤새 고민하는 순수한 마음을 안은 채로 찰나적 쾌락에 몸을 맡기고 여자로서의 나를 돋보이기 위해 어수룩한 동성친구를 이용한다. 사랑의 열기에 온통 휩싸여 바닥까지 드러내며 모든 걸 포기하고 그를 찾아가지만, 마주한 그의 어색한 미소가, 이것은 한 번도 사랑이었던 적이 없었다 말하는 걸 느끼며 천 갈래로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그저 돌아서기도 한다. 안노 모요코, 그녀는 여성의 고운 화장 아래 맨얼굴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작가다. 다수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작가는 여‘성’의 미묘한 심리, 추악함 그리고 아름다움을 그린다.

 

 

지방이라는 이름의 옷을 입고

『지방이라는 옷을 입고脂肪という名の服を着て』표지들. 왼쪽이 초판, 오른쪽이 완전판.

 

 

 

『지방이라는 이름의 옷을 입고』는 1997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2012년 완전판으로 재발간되며 지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파격적인 표지와 제목으로 미루어 다이어트에 목매는 젊은 여성 이야기 아닐까, 했다. 맞지만, 반쪽짜리 설명밖에 안 된다.

뚱뚱하다느니, 못났다느니 놀림당하며 살아온 여자 하나자와 노코는 직장 스트레스와 외모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푼다. 그래서 더 찐다. 딱히 뺄 의지도 없다. 그녀에게는 살찐 모습이 귀엽다고 말하는 오랜 연인이 있고 먹으면 기분이 풀리니까. 일에 열의 없는 태도와 외모 때문에 주눅 들어 자기 의견을 확실히 개진하지 못하는 모습의 자신을 ‘애인이 좋아해주니까’, ‘그래도 일을 하고 있으니까’라며 합리화하는 그녀를 드러내놓고 싫어하는 한 여자가 등장한다. 마유미라 불리는 이 OL은 날씬한 몸매에 화려한 외모를 가졌지만 내면은 자존감 낮은 노코와 크게 다를 바 없이 형편없다. 돼지같은 여자들은 살 가치도 없다고 일갈하며 미모를 이용해 노코를 좌천시키는 것도 모자라 그녀의 애인까지 유혹한다. 그.래.서 노코는,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잃은 것’을 되찾으려는 마음이 급한 나머지 그녀는 토하고, 또 토한다. 이렇게 날씬해진 노코를 보며 마유미는 자신이 입는 옷과 비슷한 사이즈를 입고, 비슷한 머리를 해도 잘 어울리는 노코를 더욱 증오하며 회사에서 아예 해고당하도록 공작을 꾸민다. 노코의 직장 동료들은 마른 그녀를 그녀로 인정하지 않는다. 노코의 연인은 살 뺀 그녀를 뒤로 하고 다른 뚱뚱한 여자와 결혼해버린다. 살을 빼면 모든 것이 좋아질 거라 꿈꾼 미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다.

 

마유미는 자기관리하지 않는 노코도, 살을 빼 자기와 비슷한 지위를 점하려 했던 노코도 꼴불견이었을 것이다. 살찐 여자가 좋다는 옛 연인은 ‘너같이 뚱뚱하고 자존감 낮은 애들은 참 편리하지. 바람피워도 적당히 대해도 다시 남자를 사귈 수 없을까봐 잠자코 있으니까’ 같은 속내가 있었다. 노코가 좌천당해 내려간 지하 사무실의 동료들은 왜 살 빠진 그녀를 인정하지 못했던 걸까. 자신과 같은 실패자 집단에서, 스스로 무언가 성취를 이룬 것이 마뜩찮았던 걸까? 『지방이라는 이름의 옷을 입고』는 그 ‘옷’의 두께가 몇 센티미터이든 마음이 병든 사람들 투성이다. 나의 사사로운 질투, 나의 오만함, 나의 비굴함… ‘나의 몸과 마음’이란 테마를 이토록 세밀하고 박력 있게 그린 작품이 왜 아직 출간되지 않았을까? 유려한 한글번역으로 다시 한 번 그들이 뒤엉킨 진창을 응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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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1. 오래전에 원서로 읽었는데 씁쓸하고 찝찝한 느낌이었어요. 그때는 수위 때문에 국내에서 발간되지 않는다고생각했는데…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나올때도 됐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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