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MAN #07 언어의 정원言の葉の庭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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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정원

『언어의 정원』, 신카이 마코토, 2013년, 45분, 일본

 

 

“교복의 옷자락을 적시는 타인의 우산, 누군가의 양복에 배어있는 나프탈렌 냄새, 등으로 떠밀려오는 체온, 얼굴로 세차게 부는 에어컨의 불쾌한 바람. 어릴 적에 올려다 본 하늘은 지금보다 가까웠다.”

 

 

 

출근길에 비내음이 밀려오면 조건 반사로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생각난다. 그러면 괜시리 지하철에서 내려 무모한 일탈을 청하고 싶어진다. 비를 피해 벤치에 앉아 멍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쩌면 나처럼 궤도를 이탈한 또 다른 기묘한 인연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상상하며 설레기까지 한다.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은 장마가 시작되는 6월에서 여름이 끝나는 10월 사이에 일어난 두 남녀의 짧은 만남을 그린 이야기이다. 툭툭 떨어지던 빗방울이 하염없이 긴 빗줄기가 되고, 폭염에 흔적을 감추었다가 뜻밖의 폭우로 한달음에 찾아오는… 마치 시작하는 연인의 감정의 희비쌍곡선을 비에 빗대어 표현한 사랑 이야기이다.

 

 

1교시 땡땡이의 교차점

한 남자가 있다. 비 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1교시를 제끼고 신주쿠 공원으로 향하는 고교생 ‘다카오’. 구두 디자이너를 꿈꾸는 그는 빗소리를 들으며 남몰래 스케치북에 만들고 싶은 구두를 그린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기에 자신의 꿈을 위해 방과 후 아르바이트로 차곡차곡 돈을 모아 구두 작업비를 모으는 다카오. 가족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도 자신의 꿈을 말하지 않았던 그는 어느 날 한 여자를 만나 자신의 꿈을 고백한다.

한 여자가 있다. 매일 아침 정장을 입고 근처 공원으로 향하는 교사 ‘유키노’. 그녀가 공원에서 하는 것이라고는 아침부터 맥주에 초콜릿을 먹는 것뿐. 그 둘 외에는 전혀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된 그녀는 다카오와의 만남을 통해 조금씩 미각을 되찾아 간다. 무미건조한 삶에 비로소 짠맛, 쓴맛이 차례로 되돌아오기 시작한다.

6월의 여름비가 내리는 날 우연히 공원 벤치에서 만난 두 사람의 만남은 결과적으로 스승과 제자의 부적절한 만남으로 환원된다. 다카오는 유키노의 정체를 짐작조차 못했던 반면, 유키노는 첫 대면부터 다카오의 학교까지 알게 된다. 유키노는 다카오는 물론 관객들까지도 감쪽같이 속인 셈. 하지만 그 덕분에 스승과 제자라는 올가미가 씌워지기 전의 전반부는 한 여자와 한 남자의 풋풋한 순애보로 그려지는 데 부족함이 없다.

 

언어의 정원 01

 

비의 정원

사실 『언어의 정원』은 이야기 구조가 탄탄한 작품은 아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이전 작품들이 모두 그런 면들이 있긴 했지만 이 작품은 특히나 시적 압축과 표현을 절정으로 추구하고 있다. 자칫 뻔할 수 있는 이야기에 남다른 특별함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비’다.

비에 대한 묘사는 『언어의 정원』을 걸작의 반열에 올린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의 장벽이 만들어 내는 신비한 고요함, 잔잔한 물 위로 비친 하늘의 풍경, 빗물에 잠긴 화분, 격렬하게 부딪쳐 튀어 오르는 빗방울. 비는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감정의 변화를 표현하는 동시에, 마냥 자신을 기다리는 두 사람에게 더는 시간이 없다고 다그치는 모래시계와도 같다.

다카오가 유키노의 발 사이즈를 재는 순간 수직으로 내리 꽂히는 빗방울들의 오버랩은 마치 어떻게든 땅 위에 서보려는 맨발의 빗방울에게 다카오가 구두를 만들어 주려는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 할 정도다. 신카이 마코토가 말하려했던 ‘언어’란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만엽집의 단가가 아니라,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비’였을지도 모르겠다.

 

언어의 정원 02

비가 오면 넌 여기에 머물러 줄까?

격렬한 고백 후 둘은 각자의 길을 간다. 유키노는 시골 학교로 내려가 홀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고, 다카오는 형마저 떠나고 홀로 남은 집에서 학교와 아르바이트를 오가며 구두 작업에 정진한다. 작품은 ‘사랑’의 완성 이전에 각자의 ‘자립’을 응원한다.

『언어의 정원』은 둘의 관계에 대해 열린 결말을 채택하는 듯 보이지만 복선은 작품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필름을 다시 앞으로 돌리면 다카오의 엄마가 띠동갑 연하남과 살겠다고 집을 나간 것이 그 첫 번째인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구두를 선물한 이후 구두를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고 결심한 다카오는 첫 공식작품으로 유키노의 구두를 완성한다. 다카오는 아마도 유키노를 통해 엄마를 이해하고, 또한 자신의 각오를 발견했을 것이다.

여름의 끝을 알리는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니 모처럼 두 사람의 안부가 그립다. 다카오의 두 번째 구두는 잘 나왔는지. 유키노의 교편생활은 자신만의 맛을 내기 시작했는지. 무엇보다 답가 이후의 답가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지 말이다.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당신이 붙잡아 준다면 난 머무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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