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그맛, 병맛 #03 너희가 ‘카텐포리즘’을 알아? : 『SM 플레이어』 랑또 인터뷰

1

SPECIAL. 그맛, 병맛 #03 너희가 ‘카텐포리즘’을 알아? : 랑또 인터뷰

.
.
랑또
.
.

병맛 만화에도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미친 캐릭터 하나가 하드캐리하는 병맛, 쉴새 없는 입 털기와 현란한 말장난으로 뉴런을 마비시키는 병맛, 식사 전후 30분 동안은 절대 보아선 안 되는 더러운 병맛…. 각기 전략은 달라도 대부분의 병맛 만화들은 보통 사람들의 사고 궤도에서 살짝 벗어난 전개로 웃음을 유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랑또는 병맛의 춘추 전국 시대에서 조금 다른 노선에 서 있다. 그는 제목에 대놓고 ‘설정’을 공표한 다음 밀어붙인다. 『야!오이』이라는 누가 봐도 흠칫 놀랄 만한 제목을 지어 놓고 진짜 오이를 등장시켜 독자들만 헛기침하게 만들었고, 『SM 플레이어』에서는 ‘쌀쌀맞지만 따뜻한 만화’, ‘주인공이 가차 없는 만화’ 등의 설정을 에피소드 제목으로 붙여놓고 정말 쌀쌀맞지만 따뜻하고 주인공이 가차 없는 만화를 그렸다. 범인이라면 애초에 생각도 못할 ‘돌진’이, 바로 랑또의 무기다. 거기에 『SM 플레이어』라는 제목이 민망하니 앞으로는 ‘카텐포리즘과 미장센’으로 불러달라는 뻔뻔함까지! 문제는 ‘카텐포리즘’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랑또의 만화를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
.
.
.
‘랑또’라는 닉네임의 유래가 궁금합니다.

아주 오래 전에 아는 분이 지어준 필명인데, 그 분과 그 뒤로 만나질 못해서 저도 이름의 유래와 뜻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
.
.
요즘은 작가들이 트위터 등을 통해 자신을 노출시키며 하나의 아이콘화 되기도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엄격하신 편입니다.

사적인 노출은 만화가 나름의 취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적인 부분은 오롯이 저 혼자 향유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제 개인적인 부분이 만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개그 만화는 자칫하면 누군가를 겨냥했다거나 비하했다는 오해를 사기가 쉬운데, 그것이 제 사적인 정보와 맞물려서 확대 재생산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독자 분들께서 제 만화를 어떠한 편견도 선입견도 없이 봐주시길 원합니다. 굳이 공격적이거나 누군가에게 악의를 가진 내용은 그리지 않지만, 혹시라도 오해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불필요한 정보는 드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어떻게 하는 건지 전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그냥 조용하게, 영원히 만화를 그리다가 죽는 게 제 소원입니다.
.
.
.
만화를 그리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 ‘살짝’ 이야기해 주실 수 없나요?

아니오. 싫습니다.

…는 농담입니다. 하하하하하. 그냥 평범한 직업인이었습니다. 언젠가는 만화가를 할 작정이었고 그 시기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술 먹고 홧김에 만화를 그려서 올려버렸어요. 그 이후 책임감 때문에 계속 연재를 하다 보니 어느새 은근슬쩍 만화가가 되어버렸습니다.
.
.
.
『SM 플레이어』는 캐릭터 자신이 만화 주인공을 연기하고, 작가님의 오너캐가 등장하는 등 설정이 메타만화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싶은 단편 만화는 많은데,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었습니다. 제목에 설정을 전면적으로 내세워 설정을 설명하는 데 쓰이는 시간을 줄이고, (각기 다른) 단편이 단순 반복되기보다 5화 정도에 한 번씩 환기를 시키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
.
.

작가 '랑또'의 오너캐.

작가 ‘랑또’의 오너캐.

.
.
.
매 에피소드마다 다른 장르와 소재를 설정하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소재와 아이디어는 산지사방에 널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시험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 대해 ‘이 소재로도 만화를 그릴 수 있을까? 그린다면 어떤 장르가 어울릴까?’ 하는 식으로 구상하고 있습니다. 설정이 독특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야기가 흔들리지 않도록 주의하는 편이고요.
지금까지 다루지 않았던 장르들은 나중에 중편이나 장편으로 그리고 싶은 스토리와 겹쳐서 가급적 아껴두고 있습니다. 제가 능력이 되는 한 모든 장르를 다 그리고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
.
.
완성도나 재미, 반응 면에서 만족스럽고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시즌1 41화의 「주인공이 가차 없는 만화」를 제일 좋아합니다만,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가 좋았던 내용은 시즌1 31화 「쌀쌀맞게 따뜻한 만화」였던 것 같습니다.
.
.
.

『SM 플레이어』 시즌1 41화 「주인공이 가차 없는 만화」. 에피소드 내내 주인공이 가차 없다.

『SM 플레이어』 시즌1 41화 「주인공이 가차 없는 만화」. 에피소드 내내 주인공이 가차 없다.

.
.
.

『SM 플레이어』 시즌1 37화 「쌀쌀맞지만 따뜻한 만화」.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지며 화제를 낳았던 에피소드. 츤데레는 사랑입니다.

『SM 플레이어』 시즌1 37화 「쌀쌀맞지만 따뜻한 만화」.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지며 화제를 낳았던 에피소드. 츤데레는 사랑입니다.

.
.
.
마감 시간을 굉장히 잘 지키시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평소 남는 시간에는 무엇을 하며 보내시나요?

가족과 친구를 만나거나 혼자 밖을 마구 돌아다니면서 글을 씁니다. 만화 그리는 것 외엔 아무 취미가 없기 때문에 시간이 남으면 차기작 구상을 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차차기작 구상을 합니다. 이 질문 때문에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진짜 아무것도 안하네요. 아무래도 레저 스포츠나 기타 같은 걸 배우고 싶어도 손이 다칠까봐 할 수 없는 게 많다보니, 취미의 영역이 좁아지다 못해 사라진 것 같습니다.
.
.
.
보통 병맛 만화의 경우 작가 스스로의 세계가 굉장히 견고한 경우가 많은데, 랑또 작가님은 독자들과 활발히 소통하시고 그 결과가 작품에 자주 반영됩니다. 단행본 출판도 독자 펀딩으로 내셨고요. 독자와의 소통에서 에너지를 얻는 편이신가요?

독자의 참여는 신선함과 리얼함을 동시에 줍니다. 오로지 제가 짜놓은 판 안에서 만화를 그리는 것도 좋지만, 독자가 참여하면 예측을 불허하는 느낌이 좀 더 리얼해집니다. 마술쇼에서 관객을 무대로 불러 공연할 때 긴장감과 현실감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요.
단행본을 독자 펀딩으로 낸 것은 출판사가 책을 안 내주기 때문입니다. 하하하하하. 출판사가 지구의 나무를 굉장히 소중히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펀딩은 아마 다신 못할 것 같습니다.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작품 활동에 지장이 너무 컸습니다. 호응해 주신 독자 분들의 응원과 사랑이 아니었다면 아마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출판사가 출판을 해 주면 좋겠지만 저 또한 자연보호를 중요하게 여기는지라 죄책감이 좀 들 것 같네요.
.
.
.

『SM 플레이어』시즌1 51화  「시즌2 기념 오픈파티」편. 이미지 속 오겡끼데스까남은 랑또의 독자다. 그리고 이어지는 랑또 주도의 댓글 조작 현장.

『SM 플레이어』시즌1 51화 「시즌2 기념 오픈파티」편. 이미지 속 절규남은 랑또의 독자다. 그리고 이어지는 랑또 주도의 댓글 조작 현장.

.
.
.
요즘은 ‘약 빤 것 같다’는 말이 리스펙트를 뜻하는 관용어구로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랑또님의 작품 역시 대표적으로 ‘약 빤 만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독자들은 왜 이런 만화에 열광할까요?

새롭고 색다른 느낌을 좋아하시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만화를 원래 좋아했는데요, 딱히 그리는 작가가 많지 않았던지라 ‘내가 직접 그려볼까’ 해서 데뷔하게 됐습니다. 의외로 저와 같은 취향의 독자 분들이 꽤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시대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
.
.
특별히 챙겨 보시거나, 과거 보셨던 작품 중 기억에 남는 ‘병맛 만화’가 있는지요.

원래 어릴 때부터 개그만화 마니아였는데, 의외로 개그만화가 별로 없어요. 살면서 제일 좋아했던 건 김진태 작가님의 『신한국 황대장』과 신영우 작가님의 『키드갱』이었던 것 같고요. 가장 최근에는 네이버 웹툰 『꽃가족』이 개그센스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점에 감탄했습니다.
개그만화는 순수한 독자 입장으로 즐기고 있지만, 어떤 개그를 어떤 방식으로 사용했는지 분석하는 것도 굉장히 좋아합니다. 배울 점은 배우고, 반면교사로 삼을만한 부분은 신경 쓰고 있습니다.
.
.
.

신한국황대장

김진태의 『신한국 황대장』. 1993년 9월부터 95년 7월까지 만화잡지 『보물섬』에서 연재됐다. 『대한민국 황대장』의 속편으로, 황대장의 아들이 학교에 다니며 악을 물리치며 느끼는 애환과 고충(?)을 담아낸 개그만화다.

키드갱

신영우의 『키드갱』. 죽은 형사의 아기 철수를 동네 깡패 조직 ‘피의 화요일파’가 맡아서 키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개그만화. 『보물섬』에서 연재를 시작했으나 96년 폐간 이후 잡지 『센』과 인터넷 만화 사이트 ‘코믹스투데이’를 거쳐 네이버 웹툰에서 2014년 완결했다.

.
.

.
.
.
작업하시면서 표현 수위나 소재 등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있나요?

수위가 있는 개그를 할 때는 저만의 확고한 규칙이 있습니다. 저질개그는 ‘중의적이고 깨끗하게’, 또는 ‘할 거면 아주 강하게’라는 것입니다. 어쭙잖은 저질개그는 불쾌감만 유발하고, 어설픈 성지식을 가진 미성년자들에게는 유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아예 깊고 강한 부분을 찌르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사실 네이버에 연재를 하면서 어디까지 표현이 가능한지 시험 중이라 아직 확실히 윤곽이 잡히지 않았습니다만, 보기 불쾌하거나 누군가를 비하하는 개그는 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습니다.
.
.
.
『SM 플레이어』 시즌2 12화나 36화는 거의 성인 코미디물에 가깝습니다. 매 컷마다 에너지도 엄청나고요. 성인을 대상으로 한 코미디 만화는 생각해본 적이 없으신지요.

정말 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제가 생각보다 더 변태인 걸 알면 크게 실망할까봐 자중하고 있습니다. 그림도 좀 더 잘 그렸으면 좋겠고요.

 

『SM 플레이어』 시즌2 12화 「세 번째 컷은 그라비아 포즈로 그려봤습니다」편.

『SM 플레이어』 시즌2 12화 「세 번째 컷은 그라비아 포즈로 그려봤습니다」편. 작가가 평소 그라비아를 챙겨보지 않았다면 이런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을까…?

.
.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작가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어렵네요. ‘자유를 추구하는 망나니(?)’ 정도인 것 같습니다.
.
.
.
만화가로서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정말 꾸준히 성실히 만화를 그리는 작가요. 만화 그리는 기계로 사는 게 저의 꿈입니다.
.
.
.
마지막으로 랑또 작가님에게 ‘카텐포리즘’이란…?

‘이 시대의 문화적 사회적 화두를 주도하는 교양인들이 배워 나가야 할 필수 요소’ 아닐까요.

 

 

.

공유하기

필진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