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촉구 #04 다쓰미 요시히로, 『극화표류劇画漂流』(1998)

4

 

re_002

『극화표류(劇画漂流)』

다쓰미 요시히로(辰巳ヨシヒロ), 1998

 

아마도 만화를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선 ‘극화(劇画)’라는 장르의 이름을 심심찮게 들어봤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박봉성, 이현세 등의 작가들이 필두로 한 스포츠, 정치, 성인물의 작품에 극화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국내에서 극화라고 명명된 작품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사실적인 그림체와 영화적인 연출, 어린이가 아닌 비교적 높은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스토리 등이 극화의 스타일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단순히 스타일만으로 생각하고 있는 국내의 극화와는 다르게 진정한 극화(劇画)가 무엇인지 우리는 한번 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소개하려고 하는 작품은 매우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극화의 창시자인 다쓰미 요시히로(辰巳ヨシヒロ)가 1998년부터 2009년까지 연재한 자신의 자서전격의 작품인 『극화표류劇画漂流』를 통해 진정한 ‘극화(劇画)의 의미’를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극화(劇画)의 창시자, 다쓰미 요시히로(辰巳ヨシヒロ)

 

001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35년에 태어난 다쓰미 요시히로(辰巳ヨシヒロ)는 일본 만화역사에서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이다. 어린 시절, 만화의 신이라고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てづかおさむ)의 만화를 좋아하던 다쓰미 요시히로는 훗날 데즈카가 만들어낸 일본 만화의 표현기법을 더욱 심화시키고 발전시켰다. 물론 데즈카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작가는 아니지만, 그의 등장으로 인해 일본만화는 어린이뿐만이 아니라 청년과 어른들도 볼 수 있는 높은 연령의 독자층을 확보하게 된다.

데즈카 이전의 일본만화와 데즈카의 초기 작품들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영향을 받은 캐릭터의 조형성과 움직임, 스피디한 연출에 집중하며 어린이들을 위한 컨텐츠로만 존재했었다면, 다쓰미 요시히로는 기존의 일본만화와는 다른 사실적인 스타일을 고안해냈다. 특히 칸의 배치와 독자가 칸을 보는 시간적 타이밍을 연구하며, 의식적으로 독자가 만화 안에서 시선을 유도하는 방법을 고안해내게 된다. 칸의 크기와 배치, 대사의 장단을 조절하며 독자들이 작품 속에서 흐르는 시간을 한층 더 사실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 동안 어린이들이 주 연령층이었던 일본만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리얼리즘’을 부여한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히노마루 문고에서 함께 활동하던 마쓰모토 마사히코(松本正彦)와 현실감 있는 만화를 지향하게 된다. 다쓰미 요시히로와 마쓰모토는 이러한 과정에서 이때까지 없던 심오한 주제와 권선징악을 탈피한 이야기의 만화를 그리게 되는데, 이러한 이유로 1957년에는 만화를 보는 주 연령층인 어린이들에게 좋지 않다는 학부모들의 비판이 거세진다. 이에 다쓰미는 자신의 만화를 기존의 만화와 구별하기 위해 ‘게키가(げきが)’ – 극화(劇画)라고 명명한다.

극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가인 암울한 일본사회에서 탄생한 기존의 어린이용 컨텐츠로만 존재하던 만화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 암울한 시대를 겪어온 작가들에게 심오하고 현실적인 주제의 이야기를 앞세운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시대적 현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극화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였고, 그 시대상에 놓인 인간존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이것은 다쓰미 요시히로가 늘 가슴에 품고 있던 극화(劇画)의 정신이었다.

 

 

 

 

다쓰미 요시히로의 『극화표류(劇画漂流)』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 직후, 오사카에서 살며 데즈카 오사무와 오시로 노보루의 만화를 좋아하던 학생인 가쓰미 히로시는 형을 따라 만화잡지의 독자투고란에 자신이 그린 만화를 투고한다. 투고한 작품들이 뽑히게 되면서 만화가의 꿈을 키워가기 시작하는데, 이 과정에서 동경의 대상이었던 데즈카 오사무를 직접 만나게 되고 오시로 노보루에게선 편지로 격려를 받게 된다.

개인적으로 만화가의 꿈이 있어서 그런지, 작품 속 히로시가 학창시절 만화가의 꿈을 가지고 만화를 그리는 과정에 스스로도 공감이 많이 됐다. 특히 그의 동경의 대상인 데즈카 오사무를 만나는 장면에서 히로시의 눈에 비친 데즈카의 모습이 인상 깊은데, 누구든지 동경하는 작가를 만나면 히로시와 같은 심정이 될 것이다.

 

 
극화표류 01

 

‘굉장한 세계를 그리는 천재가 옆에 있다!! ‘

 

– ‘하지만 데즈카 오사무씨는 길거리에서 흔히 보이는 형들이랑 전혀 다르지 않은데.’

 

 

 

 

데즈카 오사무 뿐만이 아니라 『극화표류』에서는 쓰게 요시하루(つげ義春)와 같은 일본 만화 역사에서 족적을 남긴 유명한 작가들이 조금씩 등장하는데, 다쓰미 요시히로의 손으로 그려진 여러 작가들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극화표류』의 소소한 재미거리다.

 

 

극화표류 02

 

“누구?” 

“쓰게 요시하루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만화가로서 삶을 결심한 히로시는 마츠모토 마사히코, 사이토 다카오(斎藤隆夫), 사토 마사아키(佐藤まさあき) 등의 동년배 동료들과 경쟁해나가며 그들과 함께 기존의 어린이들이 주 연령층이었던 만화에서 탈피한 ‘만화가 아닌 만화’를 고안해내고, ‘극화(劇画)’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극화공방(劇画工房)’을 결성하여 극화를 끈임 없이 발표해나가면서도 불안한 일상과 극화공방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몇 가지 사건으로 점점 의욕을 잃게 된다.

『극화표류』의 이야기는 앞서 설명했던 다쓰미 요시히로를 필두로 한 극화의 탄생과정을 반영한 실제 이야기다. 하지만 작품의 주인공을 본인이 아닌 본인의 분신인 가쓰미 히로시로 등장시켜 자신에게서도 확실히 거리를 두어 객관적인 시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이 이유는 『극화표류』는 단순히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을 언급하며 시대상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루할 수도 있는 개인의 자전적 이야기가 전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이유는 히로시 개인의 이야기뿐 만 아니라 당시의 일본의 모습과 사건들을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화표류 03

 

1953년 2월, 훗날 추리소설 붐을 일으키는 마쓰모토 세이초가 고미 야스스케와 아쿠타가와 상을 동시 수상.

 

그리고 3월 당시 수상 요시다 시게루가 국회에서 ‘바보자식!’라고 폭언을 뱉어 해산.

 

영화에서는 편광안경을 쓰고 보는 첫 입체 영화 <메트로스코빅스>가 상영되었다.
하지만 안경을 든팔이 피로해진다는 불평 속에 끝났다.

 

6월, 서일본에서 미증유의 집중호우가 이어졌다.

 

 

 

 

개인의 자전적 이야기 뿐 만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을 조명하는 것은 작품의 재미와도 관련이 있지만 작품의 주제의식과 관련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드문드문 당시 극장에 개봉했던 영화들을 언급하며 자신의 만화, 즉 극화는 영화의 사실적인 연출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으며, 여러 가지 시대적 사건들을 언급하는 것은 극화의 탄생이 이 모든 것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극화표류』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면서도 당시의 시대상을 언급하며 극화의 탄생과정이 시대상과 관련이 있음을 밝히는 중요한 이유는 작품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1960년, 5월 20일 일본 국회에서 신 안보조약을 강행체결 하였다. 6월 15일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노동조합원 580만명이 직장집회나 파업에 참가하게 되고 당시 히로시가 있던 도쿄에서는 오전부터 히비야 공원에서 집회를 열어 안보개정에 반대하는 10만 명의 데모인원이 저녁때가 되어 국회로 향하게 된다. 히로시는 그 거대한 인파에 휩쓸려 국회로 가게 되는데, 히로시는 눈앞에서 일어난 이 거대한 물결을 보며 그저 자신과 동떨어져 표류하는 줄 만 알았던 이 시대가 자신이 만들어낸 극화와 함께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 깨달음으로 히로시는 눈물을 흘리게 되는데, 필자는이 장면에서 말로 형용하기 힘든 감동이 밀려왔다. 그 시대와 자신,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극화가 함께 동떨어져 표류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고 있음을 확신한 히로시를 통해 시대와 함께한 진정한 극화의 정신, 필자가 그렇게 좋아하는 만화가 단순히 오락용 컨텐츠가 아닌, 아름답고 가치 있는 매체인 것을 간접적이지만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극화표류 04

 

 

 

시끄럽게 행진하는 커다란 사람의 물결을 따르며
히로시는 울고 있었다.

형언할 수 없는 감동과 흥분과…
몸서리 쳐지는 듯한 외로움이 덮여왔다.

6월 20일 신 안보조약은 자연 승인되어
동월 22일 일·미간에 비준이 교환,
신 조약은 효력을 발해 기지 수상은 퇴진했다.

안 돼!!
⌜극화⌟에서는 떠날 수 없어!!

 

 

 

 

 

 

『극화표류劇画漂流』의 출간을 촉구하며.

 

다쓰미 요시히로가 만화 고서점의 큰손인 ‘만다라케’에 1998년부터 2009년까지 12년 동안 연재하고 2009년 데즈카 오사무상의 영예에 오른 『극화표류』는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작품이다. 극화의 정신을 뒤로한 채 스타일과 기법으로만 알고 있던 국내의 극화시장에 대한 재평가는 둘째치더라도, 다쓰미 요시히로가 가슴에 품고 있던 극화의 정신은 이후에 시라토 산페이(白土三平)와 같은 정통 극화 작가들뿐만 아니라 이후에 등장하는 쓰게 요시하루(つげ義春)와 같은 전설적인 대안만화 작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만화가 단순히 오락적인 컨텐츠가 아닌 시대를 공유할 수 있는 예술매체임을 설파하게 된다. 게다가 『극화표류』라는 작품의 정체성은 다쓰미 요시히로가 늘 가슴에 품고 있던 시대와 함께했던 극화 정신을 오롯이 담고 있는 진정한 ‘극화(劇画)’ 작품 이라는 것에 있다. 다쓰미 요시히로는 자신의 만화 여정에서 떠날 수 없던 ‘극화(劇画)’를『극화표류』를 통해 완전히 담아낼 수 있게 되었다.

『극화표류』가 담고 있는 주제의식은 진지하고 가볍지 않은 것이지만, 800여페이지의 분량을 아마도 쉬지 않고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극화작품의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정식으로 출판되어 많은 독자들이 그 재미와 감동을 체험해보길 바라며, 더 나아가 국내에선 아직까지도 단순히 오락용 컨텐츠라는 인식이 강한 만화의 아름다운 가치를 깨닫기를 기대하며 『극화표류』의 출간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극화표류 05

 

 

‘요새는 조금 지친 느낌이군.
넘칠 만큼 체력이 있던 대본 시대가 그리워.’

 

넘치는 열정을 환상의 극화에 쏟아왔던 청춘시대.
다시 생각해보면 행복했다.

극화에 못 다한 꿈을 찾아 계속 표류해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분명……..

 

 

 

 

 

 

 

[stextbox id=”black” bgcolor=”727876″ image=”null”]

참고 서적 및 문헌

1. <극화표류(劇画漂流)> – 다쓰미 요시히로, 1998
2. 극화의 시작 ; 다쓰미 요시히로와 일본 대안만화의 초기 풍경 – 아사카와 마쓰히로, 새만화책 1호.

[/stextbox]

 

 

 

공유하기

필진 소개

올드하고 마이너한 취향을 지닌 만화 덕후. 특히 일본 고전만화를 좋아하며 쓰게 요시하루와 아베 신이치의 만화를 보고 감명 받아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만화를 독학으로 공부해왔다. 현재는 페이스북에서 ‘무능력한 사람의 만화연구소’라는 만화 관련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부실하고 제멋대로 운영 중이다.)



댓글 4 개

댓글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