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VS 만화 시즌 3] #04. 일상 너머의 발견, 만화가 원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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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연 신작 떨림

원수연 작가의 신작 『떨림』, 코미코에서 매주 금요일 연재된다.

 

그해 봄은 참으로 잔인했고 여름은 마음 시린 소식으로 보내야 했다. 원수연 작가는 답답함에 광화문으로 나섰다. 세월호 단식 릴레이에 참여했고 온라인에서 세월호 만화 전시를 이어가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만화가로서 할 수 있는 일들에 힘을 보탰다. 그리고 다시 겨울. 여름의 열기를 마음에 담아 그녀는 일터로 돌아왔다. 코가 시린 계절, 책상 앞에 앉아 신작 『떨림』을 시작했다는 원수연을 만났다. 누구보다도 치열한 여름을 보낸 그녀에게서 따뜻한 기운이 흘러 나왔다.

 


– 뉴스에서 원수연 작가의 이름을 보게 되는 일이 많았다. 최근 ‘세월호 만화 온라인 전시’나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 문제를 위한 ‘GAZA로 보내는 선물전’ 등 여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 지난여름에는 정말 뜨겁게 움직였다. 여러 작가들과 생활을 한켠으로 밀어두면서까지 다른 일에 몰두했던 여름이었다. 특히 세월호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릴레이 단식에 참가했지만, 유가족 단식이 끝나고 다른 단체들도 하나 둘씩 광화문을 떠나자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판단을 했다. 그때 우리가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을 많이 했다. 지금은 유가족들과 다른 타 문화 단체와 소통을 하면서 그들은 돕는 일들을 개별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필요하면 역시 그때 함께 움직였던 작가들과 뭉치기도 한다.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지금의 최고 이슈는 ‘이제 우리 일하면서 하자’다. 왜냐하면 이 싸움이 금방 끝나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에. 길게 가려면 우리도 숨고르기 하며 맷집을 키워 놓자고 생각했다.

– 함께 움직였던 작가들은 누구인가.
= 시사만화나 카툰, 우리만화연대 쪽 작가들이 많이 움직였다. 처음에는 이렇게 오랫동안 단식을 끌고 가리란 생각을 못했다. 그저 너무 답답해서 준비 없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유민아빠의 단식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만화계에서는 아무런 힘을 실어주지 못하는 것에 마음이 쓰였고 그래서 그냥 이런 거 저런 거 따지지 말고 친한 동료작가 몇 명과 뜻을 모아 우리끼리 광화문으로 나가자고 이야기 했다. 혹시 몰라 주변 작가 몇몇에게도 연락을 했다. 다들 각자의 생활과 마감이 있었을 텐데도 선뜻 참여해준 작가들이 있었다. 다짐에서 연락까지가 모두 하루 반 정도의 시간 안에 벌어진 일인데, 현장에는 스무명이 넘는 작가들이 모여 있었다. 먼저 참여하겠다고 연락도 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 이었다. 어떤 이슈 때문에 만화가들이 다 같이 모여서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지난여름에는 나도 많이 놀랐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작가들의 면면을 새롭게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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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떨림』을 시작한 원수연 작가를 만났다.

 

– 만화계의 여러 이슈든 사회 문제든 언제나 자기 목소리 내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몫이 무엇인지 알고 그 안에서 열심히 움직였던 작가 중 한명이 원수연인 것 같다.
= 만화가들이 뭉치지 않았을 뿐이지 사회에서 각자 목소리를 내고 있었던 사람들이더라. 나도 마찬가지였고. 그들과 힘을 모았을 때는 서로 의지가 많이 됐다. 그래서일까, 내 안에서 가장 큰 이슈는 새로운 작가들의 발견이었다.

– 이런 활동들로 인해 만화에 대한 인식도 변화된 거 같다.
= 우리가 지금 이 일들을 잊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지 않나. 다른 예술 단체들도 다 하는 일들이지만, 만화가 가장 오래 남고 쉽게 퍼트려질 수 있더라. 유가족들도 만화의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어떤 평을 받고 싶어서 한 건 아니다. 그렇게 봐주는 것이 어떤 면으로는 부담스럽다. 다만, 너무 답답해서 한 거다. 너무 답답해서 뛰쳐나갔는데, 몇몇 작가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참여를 하고 또 그들이 주체가 되는 과정을 보면서 참 신기한 경험을 했다.

– 3번째 ‘만화 대 만화’를 후배 작가 박소희와 함께 하게 되었다. 같은 만화가이자 후배로서 박소희 작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박소희 작가는 학창시절에 『아름다운 사냥』을 보고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

= 후배를 볼 때 어떤 기준을 두고 보거나 그러지 않는다. 그런데 박소희 작가는 같은 출판사 안에서 일했던 작가라 각별한 느낌이 있다. 누구나 다 노력하겠지만, 자신의 소신껏 작품 세계를 펼쳐나가는 작가라고 생각해왔다. 나처럼 목소리를 높이는 타입은 아니지만, 묵묵히 자신의 소신을 뚜렷이 가지고 가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들을 오랫동안 봐왔다.

 

원수연 일러스트

모델이 부럽지 않은 훤칠한 주인공들이 걸친 옷은 아름다움을 넘어 동경이 대상이었다.

 

– 두 분의 만화에서 보이는 ‘패션’에 대한 다양한 시도 때문에 ‘만화 대 만화’라는 범주로 묶어서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 그림 그릴 때 패션에 대해 신경 써서 그리는 편이다. 패션뿐만 아니라 나름의 디테일들이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웃음)

– 맞다. 머릿결 하나, 액세서리 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디테일이 있다.
= 괴로운 건 연출하기도 바쁜데 그리면서 그런 코디까지 해야 한다는 거다. (웃음)

– 작품 속 캐릭터들이 다들 모델처럼 훤칠하고 예쁜데 스타일까지 멋져서 부러웠던 적이 많았다. 원수연의 만화를 본 이들이라면 모두 한번쯤 느껴봤을 법하다.
= 정작 그림을 그렸던 나는 내가 왜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그리고 있을까. 다음엔 신경 쓰지 말고 그려야지 했다. 근데 그게 잘 안 되더라.

– 길을 지나가다가 갑자기 쇼윈도 앞에 멈춰 서서 디스플레이 된 옷을 꼼꼼히 살펴보는 원수연 작가의 모습을 상상했던 적이 있다.
= 의외로 책상을 벗어나면 작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작품 할 때만 집중해서 생각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작업을 시작하면 자료도 많이 뒤적거리고 그때부터 모든 것이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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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과 일상이 구분되는 건 참 좋은 것 같다. 요즘엔 자료를 인터넷에서 많이 구할 수 있겠다.

= 인터넷은 1분만 검색하면 다 나오니 편한데 너무 많은 정보와 자료가 있다 보니 시간이 더 많이 걸리더라. 한마디로 정보의 홍수로 샛길로 자주 빠지게 되니 단점도 있는 것 같다.

– 처음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원수연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세련되고 멋지단 인상을 받는다. 그에 대해서는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패션에 대한 다양한 시도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 같다. 스스로 디자이너를 꿈꾸던 날들도 있었다고 해서 그제야 왜 작품들 속 인물들 패션이 이렇게 멋진지 이해가 갔다.
= 만화가가 되기 전에 했던 일은 텍스타일 디자인이라 디자인보다는 패턴과 관련이 있었고 내가 되고 싶었던 디자이너는 시각 디자이너였다. (웃음) 근데 만화가가 됐다. 만화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참 드라마틱하다. 다른 만화가들은 어렸을 때부터 만화가를 꿈꿨는데 나는 사회생활을 하다가 어느 순간 만화에 빠져서 만화가가 됐다. 그래서인지 만화가가 되고 나서도 어리둥절했다.

– 이제 데뷔한지 28주년이 되는데 그간을 돌아봤을 때 어떤가. 만화가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많이 달라졌을까.
= 만화가가 되기 이전에는 나다운 게 뭔지 찾아 헤맸다. 가족 안에서의 나, 친구들 틈에서의 나, 사회에서의 나. 그 중 진짜 나다운 모습은 무엇인가 고민했다. 여기에 있는 내가 자신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만화가의 삶에 들어서면서 좋았던 것은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갈등을 할 여지가 없다는 거였다. 만화는 시간과의 싸움이다보니 항상 매진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래서 갈등과 갈망을 잊게 해줬다. 정신없이 살다보니 스스로 안착 된 건데 그러면서도 가장 나답게 살 수 있는 어떤 근거를 ‘만화가로서의 삶’이 제시해줬다.

 

원수연 메리는 외박중

『매리는 외박중』 – 원수연, 애니북스

 

– 신인부터 참 많은 활동을 했다. 갑자기 만화가가 돼서 어리둥절했다고 했지만, 쉼 없이 일해 온 그간을 보면 마음속에 항상 하고 싶은 이야기가 가득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 사춘기때 문학에 빠져있었는데 혼자 조금씩 쓰던 이야기들이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문학도 좋았지만 만화에 매력을 느꼈던 것은 글과 그림을 동시에 할 수 있어서였다. 그런데 만화가 어려웠던 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려야 하는 점. (웃음) 만화의 매력이 만화의 가장 어려운 조건이었다. 28년을 해왔는데 마감도 쉬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만화가의 삶은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것 같다. 일이년 하고 그만둘 것이 아니라 몇 십년을 해야 하는 일인데 그 몇 십년을 전력질주를 하며 사는 것이다. 요즘엔 어렴풋이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날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부터 얼마나 더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육체적인 한계 때문에 드는 생각인가.
=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감각이 뒤쳐진다던가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는데 어느 순간은 그것조차 부담스러울 때가 올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지금 이런 부담이 없을 때 열심히 하고 싶다. 나에게 이제는 최선을 다하는 시간만 남았다. 내가 어떤 작가로 남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이제야 들기 시작하는 것 같다. 왜 이제야 이런 생각이 들까하고 묻고 싶을지도 모르겠는데 난 항상 책상 앞에 앉아서 마감을 하고 있어서인지 지명도나 인기 이런 걸 잘 모르고 살아왔다. 내 삶은 그냥 책상에서 마감을 해야 하는 것이니까.

– 웹툰의 세계에 진입했다. 박소희 작가가 순정만화는 웹툰의 호흡과 맞지 않아서 다분히 힘들다고 밝히더라.
= 순정만화는 어깨 스치면서 넘어져서 일어나는 걸로 한 회가 지나갈 수도 있다. 그러니 웹툰의 속도와는 다소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그것 외에도 순정만화의 디테일과 호흡을 생각하면 순정작가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마감에 대한 공포감이 있을 것이다.

 

렛다이

많은 이들이 『풀하우스』로 그녀를 기억하지만, 『렛다이』도 빼놓을 수 없는 원수연의 대표작이다.

 

– 마감이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기 시작한 이후로는 일상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 일주일에 두 번 마감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다음 시즌에는 한번으로 줄였다. 마감이 두 번이라는 건 몸에 데미지를 입히는 횟수도 두 번이라는 거다. 그동안 맹렬하게 마감을 해왔고 나는 순정만화치고 적은 양을 했던 작가가 아니다. 그런데도 마감을 줄인 건 못한다기보다 그런 쉼 없이 내달리는 생활이 싫었다. 결혼을 한 뒤 일하는 엄마들이 가진, 똑같은 고민이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일에 얽매이는 동안 아이들은 자랄 것이며, 그 순간이 지나가면 함께 할 수도 있었던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내가 20년간 해왔던 똑같은 삶을 아이들이 있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똑같이 해야 하는가 많이 고민했다. 아이들에게 미안함이 들더라.

– 엄마, 아내, 만화가 그리고 원수연.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 아이들과 따로 시간을 보내는 것 보다는 같이 늘 있는 쪽을 선택했다. 작업실을 집에다 둔 것이다. 그 전에는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공간에 작업실을 만들었는데 다시 들어왔다. 어느 순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작업하는 과정에서 내게 어떤 고통이 오더라도 애들과 같은 공간에 있어야 되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들과 있는 것 자체가 마감의 일종이 되었다. 아이들이 혹시나 다투거나 이러면 저마다의 힘든 얘기를 나에게 쏟아놓는데 마감하는 중이면 세세한 부분까지 마음을 헤아려줄 수 없어서 괴롭더라. 그래도 아이들이 엄마가 보고 싶거나 말을 걸 수 있을 때 언제나 곁에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 부족한 부분은 애정표현을 많이 하는 걸로 채운다. 이런 건 남편인 강도하 작가에게 배운 힌트다. 우리집 식구들은 다 그런 표현을 많이 하는 편이다.

 

원수연 떨림의 주인공

『떨림』 – 원수연, 코미코

 

– 웹툰을 보지 않았던 독자들이 원수연의 작품을 보려고 컴퓨터 앞에 앉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독자들에게 변화가 있었듯 작가에겐 어떤 것들이 새로웠을까.
=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는 게 웹툰인 것 같다. 『매리는 외박중』은 종이원고처럼 웹툰을 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수작업을 했다. 그래서 참 괜찮은 경험이었다. 형식부터 모든 걸 작가가 만들어갈 수 있다. 새로운 독자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 많은 사람들이 원수연하면 『풀하우스』를 떠올린다. 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얻었고 이어 해외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다. 『풀하우스』는 번역되어 출간된 부수가 모두 동날 정도로 당시에 정말 엄청난 인기였다.
= 태국에서는 원작이 왜 이렇게 인기가 많나하는 토론 프로그램도 있었던 걸로 안다. 하지만 체감은 전혀 없다. 나랑은 상관없는 일 같은 느낌. (웃음) 『풀하우스』때문에 대만에서 사인회도 많이 했는데 그때 경호원을 붙여줬던 적이 있다. 나는 전혀 이해가 안 됐다. (웃음) 대만에서는 정말 인기에 대한 많은 걸 보기도 했지만 그래도 항상 내 삶은 똑같다. 책상에서 생활하고 책상위에서 마감을 해야 하는.

–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대표작은 『풀하우스』지만 아마 그에 못치 않게 『렛다이』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작품일 것 같다. 동성애를 소재로 한, 당시에는 꽤나 파격적인 작품이었다.
= 그때는 작품에 대한 얘기가 굉장히 많았다. 메인 스트림에서는 파격적인 주제였고 작품 자체도 색이 진했다. 『풀하우스』의 독자들이 떨어져 나가기도 했었고 새로운 독자들이 생기기도 했다. 『렛다이』는 가장 아끼는 작품이면서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렛다이』1권할 때는 미혼이었는데 2권할 때는 6년이 지나 결혼도 하고 아이가 생겼다. 『렛다이』는 방황하는 이들의 성장 드라마라 그사이 달라진 나는 칼 같은 날카로움이 많이 무뎌져 있었다. 다시 감을 찾는데 꽤나 방황을 했고 그래서인지 내가 처음 원했던 만큼 못해서 아쉬웠다. 작품 자체도 평가가 극과 극이다. 싫어하는 사람은 너무 싫어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한동안 푹 빠져있을 만큼 여운이 남는다고 했었다.

– 생각해보면 그저 순정만화의 틀에 갇혀 있다기보다는 새로운 싹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해왔다. 『휴머노이드 이오』나 『렛다이』가 대표적이고, 순정만화의 공식을 따르고 있지만 앨리라는 캐릭터가 신선했다는 점에선 『풀하우스』도 그렇다.
= 『풀하우스』는 정통 멜로물이라 종종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의아했다. 앨리 뻔뻔하다고 싫어하는 독자들도 많았다. (웃음) 그래도 이런 말을 들으면 참 좋다. 언젠가는 틀을 벗어난 작품을 하고 싶다. 근데 참 힘들다. 작품에 맞는 매체가 잘 없고, 매체는 또 나에게 순정만화를 원하더라. 독자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언젠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언젠가가 지금은 또 아닌 것 같다. 나는 그걸 벗어날 기회를 보고 있다. 스토리도 꽤나 많이 짜 놨다. 은퇴하기 전까지는 머릿속에 있는 몇 작품을 다 풀어내고 싶다.

 

수정 원수연 떨림의 남자주인공

신작 『떨림』의 남자주인공. 저런 얼굴을 해서 직업이 신부다….또르르..

 

– 이제는 어떤 나만의 철칙 같은 것이 생기진 않았을까 궁금하다.
= 오히려 철칙이란 걸 깨면서 작품을 하고 싶다. 철칙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뭔가 정형화 되어있는 걸 깨트리고 싶다. 예를 들어 나는 내 그림이 너무 싫다. 비교적 그림을 잘 그린다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정말 내 그림이 싫었다. 신작인 『떨림』은 뭔가 굉장히 다르게 그리고 싶었는데, 컬러라는 것 외에는 많이 달라진 게 없어서 만족스럽지가 않다. 완전히 벗어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모든 습관을 다 버리고 가야 하니까. 그래서 정반대의 것을 취한다는 건 쉽지 않더라.

– 어떤 예술가이든 항상 새로운 작품이 자신의 대표작이 되길 바란다고 한다. 신작 『떨림』은 어떤 이야기인지 물어도 될까.
= 금지 된 사랑인 신부와의 사랑 이야기다. 그런데 독자층의 연령이 좀 높다. 매체에 자주 드나드는 층이 젊다보니까 타협점을 찾는 게 힘들 것 같다. 이번에는 앞서말했듯 본격적인 컬러 만화를 한다. 원래 두 작품을 함께 준비했는데 이런 저런 일들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한 작품은 조금 뒤로 밀렸다. 워낙 뜨거운 여름을 보낸 터라 초반에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 조금 힘들었지만, 지금은 또 잘 해나가고 있다. 매주 금요일 코미코에서 볼 수 있다.

– 뜨거웠던 여름에서 나름의 발견하고 돌아왔으니 새로운 기분으로 작품을 해내 갈 모습이 그려진다.
= 사람들이 ‘새로운 발견을 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물론 새롭게 발견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발견이란 건 원래 있는 것에서 문득 찾아내야 하는 것이니까. 그만큼 사람들은 자기 고정관념과 편견에 갇혀있다. 그런데 그것을 넘어서는 순간, 엄청난 자유를 느끼고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나는 여름에 그런 경험을 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자기의 오만과 편견 그리고 지키려는 가치조차도 넘어서면 그 너머에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사실 지금 이 말도 완벽하지 않다. 내가 얼마큼 발견했는지 모르고 또 내가 발견한 게 내일이면 아주 미천해 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거에 인색하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작품도 마찬가지도 작가로서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읽으면 굉장히 다른 지점을 발견하는 작품들이 있지 않나. 그런 작품을 그리는 작가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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