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학적인 매운 맛, 『유쾌한 왕따』의 김숭늉

1

유쾌한 왕따 인터뷰 특성화

 

김숭늉의 만화는 거침없다. 세상이 끝날 것처럼 마음이 아픈 날, 정말 세상이 끝나 버린다. 『온퍼레이드』에선 지호가 여자친구에게 채인 날이 그랬다. 『유쾌한 왕따』의 동현이도 그렇다. 나름 유일하게 친구라고 생각했던 진국이에게 두들겨 맞은 날, 세상이 끝나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순간, 정말 세상은 끝난다. 이제 정해진 위기를 향해 시원하게 내지른다.

세상이 멸망한 이후는 다르다. 초반 전개와는 달리, 긴장이 천천히 목을 조른다. 사람들은 재난을 맞아 일상 속의 가면을 벗어던진다. 본성을 드러낸 그들은 자신만의 국가를 건설한다. 이 속에서 주인공은 무색무취의 그림자가 된다.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 섞여, 때론 냉담한 관찰자로, 때론 중재자로, 또 때로는 최고의 용사가 된다.

김숭늉은 『유쾌한 왕따』로 2014년 에이코믹스 ‘올해의 신인작가’로 선정됐다. ‘신인’이라는 이름표를 달았지만, 이번이 첫 작품이 아니다. 2011년도 다음 공모전에 『온퍼레이드』로 우수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현재 모두 레진코믹스에서 볼 수 있다)

 


 

김숭늉 작가 프로필

직접그린 캐릭터로  인사를 전해온 김숭늉 작가!

 

– 필명을 ‘김숭늉’이라고 지은 이유가 있는지.
= 별 뜻은 없다. 임팩트 있는 이름을 갖고 싶었다. 본명 같기도 하고 가명 같기도 한. 그러던 중 ‘숭늉’이라는 단어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밍숭맹숭하고 구수한 느낌. 왜 ‘김 안나는 숭늉이 더 뜨겁다’라는 속담도 있지 않나.

– 에이코믹스 ‘올해의 신인작가’에 뽑혔다. 주위에 변화가 있는가.
= 온라인에서 반응이 있다. 일단 『유쾌한 왕따』의 조회수가 많이 늘었다. 에이코믹스를 보고 내 만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덕분에 편집부에서 신경을 조금 더 써주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

– 애니메이션과를 나왔는데 만화를 그리고 있다.
= 처음엔 만화를 그릴 생각이 없었다. 일일이 손으로 그리는 애니메이션 작업이 더 좋았다. 전공을 살린 일을 찾다가 콘서트 기획사에 들어갔다. 공연 중 무대 화면에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유쾌한 왕따 22

반에서 왕따인 동현이와 진국이를 불러놓고 ‘괴롭힘 같은 걸 당하냐’고 태연하게 물어보는 담임.

 

– 그런데 그만뒀다.
= 일단 시기가 맞지 않았다. 일은 바쁜데 개인적인 일도 정신없었고, 회사 일이 나에게 맞는 지도 의문이었다. 그러던 중 친구가 같이 만화를 그리자고 제안했다. 마침 다음 만화공모전이 있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게 『온퍼레이드』다.

– 만화가 중요한 업이 됐다.
= 지금은 다른 걸 할 생각이 없다. 『유쾌한 왕따』 전까진 내 인생이 어디로 갈지 잘 몰랐다. 『온퍼레이드』가 끝나고 3년을 놀았다. 그 동안 외주나 전시 쪽 일을 했다. ‘도하 프로젝트’ 라는 게 있다. 가수 하림씨가 금천구청에서 했던 프로젝트인데, 주로 거기서 작업을 많이 했다.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내가 40, 50대가 되면 뭘 하고 있을까 생각해봤다. 작품 활동은 계속 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니 미래가 안보이더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만화라는 생각이 들었고, 『유쾌한 왕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유쾌한 왕따』는 불쾌하다

 

– 극중 주인공인 동현은 유쾌함과는 거리가 멀다. 왜 제목을 『유쾌한 왕따』라고 지었는지.
= 처음엔 ‘왕따‘를 주제로 한 4컷 개그만화를 준비했다. 『자학의 시』 처럼, 가학적인 상황을 희화화시키고 싶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그림말이다. 왕따 하나만 갖고 이야기를 풀다 보니 재미가 없어서 살을 붙였다. 그러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제목은 4컷 만화 시절부터 『유쾌한 왕따』였다. 이후 내용이 완전히 바뀌었지만 이 제목 그대로 가고 싶었다. 이중적인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 『유쾌한 왕따』엔 다양한 학생이 나온다. 본인의 학창시절은 어땠는가.
= 중학교는 피해자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때 살이 빠지고 키가 크면서 나름 학교생활을 즐겼다. 그 시절, 나는 왕따 피해를 벗어났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도 누군가를 괴롭혔다고 하더라. 난 친구였다고 기억했는데 상대방은 아니었다. 내가 자각 없이 누군가를 괴롭혔다는 사실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 누구나 있을 수 있는 경험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가해자가 되는 것. 내가 피해자인 상황은 기억에 오래 남는데.
= 괴롭힘을 당했다는 친구와 나중에 만날 기회가 생겼다. 운동을 열심히 해서 몸이 엄청 좋아졌더라. 그 와중에도 나를 경계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다.

– 그렇다면 본인의 경험이 만화로 이어진 건가.
= 실제로 내 주위에 있는 누군가를 관찰하기보다는 캐릭터 하나하나가 나를 분열해서 성격을 쪼개 쓴다고 본다. 왕따를 정말 심하게 당하는 애들을 봤던 경험도 도움이 됐다. 극 중 동현이와 진국이가 싸우는 장면은 내가 직접 봤던 거다. 실제로는 더 끔찍했다. 일진이 시켜서 두 친구가 싸우는데, 처음엔 장난으로 툭 툭 쳤다. 그게 점점 세져서 나중엔 크게 싸웠다. 갑자기 한 명이 홱 돌아서 문짝에 머리를 받아버렸다. 그 친구는 쓰러지고, 피가 났다. 중학교 내내 두 친구의 머리에는 스트레스성 원형탈모가 있었다. 내 만화를 보고 잔인하다고 표현하는 독자들이 많은데, 내 기억에 현실은 더 잔인했다.

유쾌한 왕따 그림1

동현과 진국의 싸움. 모두들 둘의 싸움을 노예의 대결을 바라보듯 관전한다.

– 작가 본인이 가장 많이 투영된 캐릭터는 누구일까.
= 굳이 꼽자면 승준이나 진국이겠다. 나도 승준이처럼 약해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입학시험을 보는 고등학교에 가서 껄렁하게 굴었다. 그게 많이 반영됐다. 진국이는 사이코패스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가장 사실적인 캐릭터다. 실제로, 진짜 왕따를 당하면 보통 자존심이 상한다. ‘나 왕따 아니야’라면서 반발하는 경우가 더 크다. 진국이에게는 애정이 많다.

 

『유쾌한 왕따』의 승준이와 진국이 (왼쪽부터)

『유쾌한 왕따』의 승준이와 진국이 (왼쪽부터)

 

– 이런 질문은 많이 받았을 것 같아 하지 않으려 했지만 도저히 피할 수 없어서…『드래곤 헤드』와 비슷하다는 의견이 있다(웃음).
= 소년 소녀가 나오는 재난물, 설정은 비슷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다르다. 『드래곤 헤드』의 경우는 로드무비의 성격이 강하다. 새로운 사건과 상황, 캐릭터를 만나며 전진한다. 『유쾌한 왕따』는 조금 다르다. 집단 내에서 권력과 개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드래곤 헤드』가 엄청난 인기작이다 보니 신경이 안 쓰일 수는 없다. 최대한 피해가려고 하는 편이다.

– 영향을 받은 작품이 있는가.
=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사채꾼 우시지마』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걸 보면 기분이 더러워진다. 그러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런 종류의 불쾌함이 또 다른 종류의 재미라고 생각한다. 『유쾌한 왕따』의 초기 제작 의도 역시, 불쾌함이다.

– 보통은 불쾌한 작품은 꺼리지 않을까.
= 음식도 단 음식만 좋아하는 사람은 없잖나. 가학적인 매운 맛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나쁜 놈이 뉘우치거나 벌을 받는 권선징악적 연출은 피한다. 나쁜 놈은 끝까지 나쁜 놈이다. 자기가 나쁘다고 자각하는 건 진심으로 뉘우칠 때가 아니라 자기보다 더 나쁜 놈을 만날 때다. 단편 애니메이션 작업을 했을 때도 불쾌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내가 이런 쪽으로 소질이 있는 게 아닐까.

 

유쾌한 왕따 55

무너진 건물 안에 고립된 진국이는 이미 죽은 성환이의 환영을 본다.

 

– 만약 『유쾌한 왕따』를 다른 플랫폼에서 연재한다면 어땠을까.
= 일단 안 실어줬을 것 같다(웃음). 그 전에 내가 알아서 자체검열을 하지 않았을까. 지금처럼 센 내용은 아닐 것 같다. 건전한 만화가 됐겠지. ‘우리 모두 힘을 합치자! 할 수 있어!’ 같은. 그렇게 된다면 재미가 없어지니까 더 연재를 못하겠다.

– 그런 교훈을 넣을 수도 있을 텐데.
= 교훈적인 내용이 아니다. 왕따 피해자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위로를 하진 못한다. 그럴 능력도 의도도 없다.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는 전제 하에 시작하는 만화다. 보는 사람은 불편하지만, 오히려 그럼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걸 의도하고 있다.

– 의미심장한 컷이 많이 나온다. 예를 들면 ‘달’이라거나.
=『온퍼레이드』의 달과 『유쾌한 왕따』의 달은 의미가 다르다. 후자에서의 달은 루나시( lunacy) 이론을 말한다. 보름달이 뜨는 밤의 광기에 착안, 이 세계가 자연 재해를 배경으로 하지만 사람들의 관계에서 생기는 재난을 다루겠다는 의미기도 하다. 달은 기폭제 역할을 한다.

 

『온퍼레이드』부터 ‘국가의 탄생’까지

 

– 데뷔작 『온퍼레이드』도 그렇고, 『유쾌한 왕따』까지. 모두 재난물이다.
= 재난물을 좋아한다. 그 중 ‘미스트’ 같은 어두운 게 좋다. 미국식 재난물 보다는 현실적인 어두움을 보여주는.

– 유독 재난물을 주로 다루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 누구나 현실에 불만족하고, 마음속으로 세상이 확 뒤집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혁명이든, 재난이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계급이 정해져 있다. 이것이 모두 백지화되면 어떨까. 리셋 버튼을 누르고 0에서 시작한다면 사람들의 본성이 더 잘 나오지 않을까.

 

김숭늉 온 퍼레이드

『온 퍼레이드』 – 김숭늉, 레진코믹스   운석이 떨어져 사랑하는 이가 죽어버린 세계에서 『온 퍼레이드』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 그 본성이 극대화된 게 『온퍼레이드』다.
= 개인적으로 애착이 많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 시작한 만화라 부족함도, 아쉬움도 많다. 비슷한 설정으로 계속 다른 작품을 생각은 하고 있다. 예를 들면 멸망한 세상 에서 여자친구가 사이비 교주가 되는 건 어떨까? 같은.

– 『온퍼레이드』의 제목을 듣고 처음엔 어떤 축제를 의미하는 게 아닌가 했다.
= 제목의 뜻은 ‘배우들이 연극을 끝마치고 무대 위에 늘어서 인사하는 행위’라고 한다. 배우가 배우의 얼굴이 아닌, 배우 자신의 얼굴로 인사를 하는 모습. 관계 속에서 본인이 갖고 있는 본래의 얼굴이 재난으로 인해 드러난다는 의미였다. 결국 뜻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었지만(웃음).

– 완결을 미리 생각하고 작업하나. 작업 방식이 궁금하다.
= 스토리를 미리 짜놓고 시작하는 타입이 아니다. 장면이나 상황을 흐름 사이에 끼워두고 그 지점을 향해 가는 길을 상황에 맞게 연결하는 식이다. 콘티를 미리 짜놔도 바뀌더라.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서 몰입하다 보면 자꾸 수정할 게 생긴다. 그러다보면 계속 고친다.

 

유쾌한 왕따 66

건물 밑에 고립된 극한 상황에서 조금씩 본성을 드러내는 아이들. 동현이는 이들을 지켜본다.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 『유쾌한 왕따』작업을 계속할 것 같다. 1부에서는 ‘악의로 똘똘 뭉친 세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야기했다. 2부에서는 배경을 넓혔다. 그 집단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형성해나가는지 풀어볼까 한다. 2부에서 그게 안 된다면 3부, 4부로 가지 않을까.

– 잠깐의 외도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이젠 작가만 할 생각인가.
= 감이 떨어지기 전까진 계속 만화를 그리지 않을까.

– 그 감은 언제 떨어질까.
= 그리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생각이 서로 멀어질 때가 감이 떨어질 때인 것 같다. ‘감’이라는 건 노력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작가의 나이보다 어린 세대가 보는 만화를 그린다. 내가 나이가 들 때쯤 작가의 연령대에 맞는 시장이 생기면 모를까. 작가는 나이가 들어가는데, 독자의 연령대에 맞출 수 있는 만화를 그리는 건 꾸준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 나 같은 경우, 자신에게 과몰입하는 걸 주의한다. 과몰입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러다보면 내가 정해진 목표를 돌아가게 되더라. 만화는 대중예술이다. 독자가 원하고 내가 원하는 부분을 맞추려면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객관화가 필요하다.
독자가 내 만화를 봐주고 공감해주는 것, 작가로선 그것만큼 고마운 게 없는 것 같다.

 

공유하기

필진 소개

...



댓글 1개

댓글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