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머의 어메이징 슈퍼히어로] #08 악당의 진화에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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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 브레이니악 특성화

슈퍼맨에 등장하는 악당 중 하나인 브레이니악. DC에서 가장 유명하고 슈퍼맨에게 최악의 적수로 꼽히는 로봇 악당이다.

 

슈퍼맨에게 새로운 능력이 생겼다. 2015년 2월 『슈퍼맨 38호』에서 슈퍼맨의 히트비전(슈퍼맨의 눈에서 나오던 광선)이 한 차례 크게 진화했다. 태양의 힘을 체내에 모아서 에너지로 쓰던 슈퍼맨이 모든 세포에 깃들어있던 태양에너지를 일순간에 히트비전으로 방출한 것. 위력이 태양의 플레어(태양 표면의 폭발)와 동일하다. 진화할 만큼 진화한 것으로 여겨지던 슈퍼맨에게 또 한 번의 진화라니! 오랜만에 느껴보는 신선함이다.

슈퍼맨의 역사에서 그가 가장 많이 진화한 시대는 1950년대에서 1960년대라고 할 수 있다. 슈퍼맨의 스토리 작가 오토 빈더와 DC의 편집자인 모트 와이징어 두 사람이 주축이 되어 끊임없이 새로운 설정들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시기다. 세계관은 팽창했고, 조연에 해당되던 ‘로이스 레인’과 ‘지미 올슨’까지도 주변의 무수한 반대를 무릅쓰고 독립 타이틀로 선을 보였다. 한낱 주근깨 소년으로 여겨지던 지미 올슨은 슈퍼맨의 친구라는 이름으로 세계관 형성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다. 재미있게도 이번 『슈퍼맨 38호』에서 슈퍼맨은 새로운 능력을 얻은 것과 동시에 신문사 동료인 지미 올슨에게 자신의 정체를 공개했다.
그리고 같은 시기, 여러 매체와 SNS에서는 슈퍼걸 드라마에 지미 올슨 역으로 캐스팅된 매커드 브룩스가 흑인이라는 것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 흑인 배우가 지미를 맡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는 사람들과 피부색보다 스토리가 얼마나 좋으냐가 중요하다는 사람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마블 어벤저스의 닉 퓨리 역에 사뮤엘 잭슨이 캐스팅 되었을 때 환호하던 사람들이 유독 지미 올슨에 대해서 까다롭게 구는 것은 단지 낯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수룩한 주근깨 청년의 위에 군살 하나 없는 탄력 있는 몸매로 뭇 여성의 시선을 사로잡는 배우를 겹쳐 놓는 게 쉽게 연상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어찌됐든 지미 올슨을 통해서 슈퍼맨의 세계에 다시 한 번 큰 변혁이 일어난다는 점은 60년대와 지금의 공통점이다.

 

지미 올슨 역에 캐스팅 된 매커드 브룩스

만화 속의 지미 올슨과 ‘슈퍼걸’ 드라마에 지미 올슨 역으로 캐스팅 된 매커드 브룩스. (왼쪽부터)

 

오토 빈더와 모트 와이징어는 슈퍼맨의 악당들에게도 큰 변화를 주었다. 그들의 족적은 오늘날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마블의 영화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개봉을 앞두고 새 예고편을 꾸준히 공개하고 있다. 지구 정복을 노리는 지성을 가진 로봇, 울트론이 주는 공포감에 벌써부터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다. 그런데 DC 슈퍼맨의 세계에도 울트론과 비슷한 주인공이 하나 있다. 바로 인공지능 로봇인 브레이니악이다. 최근 영화계에는 앞으로 선보일 DC의 ‘저스티스 리그’ 시리즈에서 브레이니악이 메인 악당으로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루머가 나돌고 있다. 소문이 실제가 된다면 두 회사의 대표 로봇 악당이 벌일 자존심 대결도 은근히 기대가 된다.
브레이니악은 1958년 액션코믹스 242호에 등장한 초록색 피부를 지닌 외계인으로 슈퍼맨과 치열한 두뇌 대결을 벌인다. 말하자면 렉스 루터(슈퍼맨의 영원한 적수 중 하나)의 우주 버전인 셈. 그런데 1964년 쯤에 브레이니악의 새로운 비밀이 밝혀진다. 알고 보니 생명을 가진 지성체가 아니라 컴퓨터였다는 사실. 생명체가 울트론과 같은 사악한 로봇으로 순식간에 변화 것이다. 브레이니악이 로봇으로 변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당시 슈퍼맨의 작가였던 오토 빈더는 원래 1920년대부터 SF 매거진의 광팬이었다. 너무나 좋아하던 SF 매거진인 『어메이징 스토리즈』에 자기 소설을 꼭 한 번 실어보는 게 소원이었던 오토는 SF 역사상 기념비적인 소설을 하나 내어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아이, 로봇』이다. 그러면 윌 스미스가 주연한 동명 영화의 원작이라고 하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아이, 로봇』은 뭐지? 실은 아이작 아시모프가 오토 빈더의 소설을 읽고 영감을 얻어서 쓴 것이 바로 같은 제목의 『아이, 로봇』이다.
오토 빈더의 『아이 로봇』에는 아담 링크라고 하는 로봇이 등장한다. 인간의 외모를 닮았으며 지성을 지닌 아담 링크는 자신을 제작한 과학자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쫒기는 신세가 된다. 1939년에 시작되어 여러 편으로 이어진 아담 링크의 이야기는 1960년대에 만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이 만화는 팬과 전문가들의 투표로 선정되는 만화상인 ‘앨리상’을 수상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오토 빈더의 아이 로봇 소설과 만화

오토 빈더가 너무나 좋아하던 SF 매거진인 『어메이징 스토리즈』에 그가 쓴 ‘아이로봇’이 커버가 됐다. 오른쪽은 이를 바탕으로 한 ‘아이로봇’ 만화.

 

그런데 어느 날 DC 편집부에 브레이니악과 관련해서 놀라운 소식이 하나 전해진다. 브레이니악이라는 이름이 DC에서 처음으로 창작된 것이 아니라, 1955년에 에드먼드 버클리라는 과학자가 개발한 컴퓨터 제작키트의 이름이라는 사실. SF 광팬으로 출발해서 슈퍼맨의 스토리 작가로 활동하고, 동시에 로켓 관련 매거진 편집자로 일하던 오토 빈더에게는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DC 편집부의 편집자들 역시 만화인이기 전에 1920년대부터 오토 빈더와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SF 광팬들이었다는 것이다. 당시에 DC를 지휘하던 모트 와이징어와 줄리어스 슈왈츠 등의 편집자는 모두 만화책이라는 미디어가 탄생하기 이전인 펄프 잡지 시대에, SF 소설 광팬으로 활동하던 인물들이다. 실제로 세 사람 모두 SF 매거진 팬 활동을 하다가 서로를 알게 되었고, 그래서 최초의 SF 팬클럽을 결성했다. 이어 최초의 SF 팬진을 만들고, SF 박람회를 개최하는 역사의 현장에 모두 있었다.
슈퍼맨을 통해서 슈퍼히어로 만화가 부흥하게 되면서 SF 소설가를 지망하던 이들이 대거 슈퍼히어로 이야기들을 쓰기 시작했다. 만화 회사들은 SF 팬진 활동을 통해서 다양한 편집자, 작가들과 인맥을 쌓았다. 작품을 보는 안목을 길러온 SF팬 출신들을 편집자로 종종 기용 했다. 단순히 만화 편집자와 스토리 작가인줄 알았지만 조금 넓게 보면 이 당시 DC 슈퍼히어로 만화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1920년대 SF 펄프 매거진의 광팬들인 셈이다. SF 팬들이 가졌던 열정과 깊이가 슈퍼히어로 만화들을 골든에이지부터 실버에이지까지, 거의 20년 이상을 견인해 오고 있었다.
로봇 소설을 썼던 작가와 SF 팬 출신의 편집자들. 상황이 그러하다 보니 브레이니악이라는 이름의 컴퓨터가 실존하고 있다는 별것도 아닌 소식이 이들에겐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을 터. 이들은 초록 외계인 보다는 미친 컴퓨터가 좀 더 사실적이라는 데에 생각이 꽂혀버렸다. 그 결과 초록 외계인 브레이니악은 하루아침에 사악한 로봇 브레이니악으로 탈바꿈하고 말았다.

 

리전 오브 슈퍼히어로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대항마로 유력한 DC의 리전 오브 슈퍼 히어로즈

 

아마 오토 빈더와 당시의 DC 편집자들이 ‘빅 히어로’같이 로봇의 새 경지를 열어준 영화를 봤다면 무척이나 재미있어 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베이맥스를 닮은 말랑말랑 소프트로봇이 실제로 과학자들에 의해 개발되고 있다고 하니 로봇 이야기의 선구자인 오토 빈더 같은 사람에겐 얼마나 신기할까. 실제 오토 빈더는 과학기술의 낙원인 미래 세상을 늘 궁금해 하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슈퍼보이가 30세기 미래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리전 오브 슈퍼히어로즈』의 세계관을 창작하였다. 그리고 그가 창작한 『리전 오브 슈퍼히어로즈』는 오늘날 DC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리즈 중 하나로 성장을 했다. 최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엄청난 인기를 달리자, 워너 브라더스가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리전 오브 슈퍼히어로즈』를 돌리면서 괜찮은 스토리를 갖고 와 보라고 하고 있다. 오토 빈더의 상상력은 오늘날 마블과 DC의 경쟁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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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 소개

그래픽 노블 평론가이자 그래픽 노블 전문 번역가. '부머의 슈퍼히어로'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