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해도 괜찮아 #12 『잔인한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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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축제_특성화 재수정

『잔인한 축제』 – 희나리, 다음

 

말년병장이 일병의 쪼인트를 까고, 사립고 이사장이 교사에게 재떨이를 던지는 게 ‘현실’이라면, 영화나 만화의 복수극은 이런 현실에 대한 문학적인 반격이라 할 수 있다. 짓밟히던 주인공이 자기를 짓밟던 강자를 패고, 찌르고, 쏘는 동안, 잠시나마 관객(혹은 독자)은 주인공에 빙의하여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런 카타르시스로 바지를 적실(?) 만큼 복수극을 좋아한다. ‘친절한 금자씨’의 이영애(금자)가 최민식(백 선생)을 교실 의자에 묶어두고 벌이는 그 피의 향연을 우리 영화사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을 정도니까. 요즘도 본인이 기저귀 차고 덤비는 ‘아저씨’, ‘테이큰 1’, ‘더 이퀄라이저’도 복수극의 범주에 들어가는 영화들이다. 비리비리한 주인공이 알고 보니 언터처블 전직 특수요원이라는 설정인데, 이는 극 초반 주인공이 평범하게 그려질수록 관객에게 더욱 잘 먹힌다. 이처럼 디테일엔 차이가 있으나, ‘강자를 향한 약자의 반격’이 복수극의 기본 구조인 것이다.

다음의 만화 속 세상에서 연재 된 『잔인한 축제』 역시 전형적인 복수극 플롯을 따른다. 가난하지만 밝고 씩씩한 성격의 여주 은수는 생활능력 없는 시인(!) 남편과 헤어진 뒤 혼자서 딸을 키우며 살아간다. 활달하고 성실한 은수 주변에는 그녀에게 호감을 가진 지인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그녀가 처음 차린 작은 가게에도 손님들이 제법 들기 시작한다. 물론 행복한 진행은 딱 여기까지. 이후 주인공의 인생은 ‘루시’라는 애완견, 악덕 사채업자 등과 얽히며 막장 내리막을 내달린다(여주의 인생을 망치는 또 다른 인물이 있지만 이건 결정적 네타이므로 패스).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째는 법. 복수극의 필연적인 과정으로서, 은수는 사시미칼과 권총으로 무장한 여전사로 각성한다.

 

잔인한 축제_특성화

『잔인한 축제』 – 희나리, 다음
아름답고 몸애도 훌륭한 여인의 피 비린내 나는 복수, 땡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이 만화가 실제로 다루는 시간은 딱 하루다. 은수와 주변인물들 간의 관계는 거의 매회마다 그녀의 회상으로 처리되는 것. 이 하루 동안 은수는 표적 5명의 밥숟가락을 놓게 만드는 미션을 수행해 나간다. 『잔인한 축제』는 19금딱지가 붙은 만화답게 잔인하다. 복수극의 좋은 점은 아무리 잔인한 묘사라도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그다지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이야기 초반 주인공의 억울한 사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지고 나면, ‘복수는 잔인해도 괜찮아!’라는 암묵적인 룰이 생겨버린다. 가령, 어떤 영화에서는 여주가 남자의 털땅콩(……)을 태우거나, 심지어 주인공이 표적의 인육을 먹기도 한다. 복수극이기에 이런 장면 앞에서도 관객은 상당히 관대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잔인한 축제』의 묘사 역시 마음껏 잔인하다. 복부에 칼 맞은 악당이 화려한 ‘장기(臟器)자랑’(?)을 펼치는 장면에서도 독자들은 거부감보단 통쾌함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이 만화, 제법 야하다. 남자들의 흔한 숨김 파일의 수위에 비할 바는 아니겠으나, 19금 웹툰을 처음 접한 입장에서 보자면 꽤나 충격적인 수준이었다. 여기서 질문하나. 그런데 웹툰이 야한 게 대체 무슨 쓸모가 있을까? 검색창에 ‘동인지 토렌트’ 같은 검색어를 넣을 필요도 없이, 요즘엔 구글 이미지 검색만으로도 그 어떤 성인용 웹툰보다 선정적인 그림들을 얻을 수 있는데 말이다. 어쩌면 남자에게 야한 웹툰이란 가슴 큰 남동생만큼이나 쓸데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스토리와 따로 노는 만화의 선정성은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잔인한 축제』의 야함은 쓸데없지 않다. 갑툭튀 서비스신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는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노출을 보여주는 편. 더 중요한 건 이 만화가가 여성의 몸을 상당히 아름답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특히, 만화 초반부터 비중 있게 등장하는 캐릭터 ‘주영’의 육감적인 나체는, 슬렌더 계열이라 할 수 있는 여주(은수)의 몸매와 좋은(!) 대비를 이루며, 남녀불문 모든 독자에게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사실 은수도 말이 슬렌더지 현실에서라면 이미 초글래머 수준).

 

잔인한 축제 벚꽃 나무

벚꽃이 만개한 날 잔인한 복수가 시작됐다며,
『잔인한 축제』는 프롤로그에서부터 비장한 시작을 알린다.

 

수채화톤 채색 방식의 『잔인한 축제』 작화에 대해선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세밀한 선이나 역동적인 동선 표현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만화는 말 그대로 정말 ‘그림 같다.’ 벚꽃이 흩날리는 배경 묘사도 그렇고, 절묘한 음영 처리를 통한 표정 묘사도 평균적인 웹툰 퀄리티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자칫 지저분해 보일 수 있는 수채화톤 채색으로 이리 깔끔하고 아름다운 장면들을 그려내는 데서 우리는 만화가의 역량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만화를 다 보고 나면 특히 두 가지 장면이 머릿속에 남을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한 ‘주영’의 아름다운 몸매(그래서 여주인공의 노출 따윈 전혀 기억나지 않아)와, 프롤로그에서도 볼 수 있는, SUV가 벚나무에 충돌한 채 멈추어 있는 장면. 특히 후자는 작화의 장점을 고스라니 드러내고 있다.

만화에도 여러 번 등장하는 ‘유지경성’이란 사자성어는 만화의 주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는 의지가 있으면 반드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뜻으로, 여주인공 은수는 이 말에 의지하며 작은 가게를 시작했던 것.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자성어는 복수의 과정에서만 실현된다. 만화 첫 장면부터 등장하는 ‘유지경성’이 암시하는 것은 결국 사업의 성공이 아닌 복수의 성공이다. 사실 복수극의 결말에서 가장 궁금한 건 복수가 성공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영화에서든 만화에서든 복수 자체는 대체로 성공으로 끝나니까. 문제는 복수를 마친 주인공이 살아남느냐 아니면 적과 함께 산화하느냐이다. 영화 ‘데스 센텐스’에서는 주인공이 자기 아들을 죽인 자들과 결국 함께 죽어버리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욕을 감독에게 퍼부으며 분노했다. ‘모범시민’ 때도 반응은 비슷했던 것 같다. 배드엔딩으로 유발되는 예술적인 여운이고 뭐고, 특히 복수극 결말에서의 주인공 사망은 항시 찝찝하기 마련. 그럼 『잔인한 축제』는 어떨까? 결제해도 괜찮은 만화니까 결말은 직접 확인해 보시길. 사실, 결말은 셋 중에 하나 아닌가. 주인공이 살거나 죽거나,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열린 결말이거나.

 

잔인한 축제 벚꽃 만개 복수

『잔인한 축제』 – 희나리, 다음
벚꽃, 로맨틱, 복수, 성공적…

 

스토리상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독자에 따라선 전형적인 복수극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만화의 구성 자체를 답답하게 느낄 수도 있다. 이 외에도 잦은 회상 장면이 극의 흐름을 망친다는 댓글도 보인다. 하지만 전형성은 대중성(재미)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거니와, 번번한 회상신 역시 ‘단 하루 동안 벌어지는 복수극’ 설정으로 인한 필연적인 부분이다. 다만, 징그러운 악역이 될 수 있었던 꽃미남 임부장의 캐릭터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점, 쉬운 길을 두고 주인공이 괜히 어렵고 아슬아슬한 싸움을 택하는 ‘복수극 클리셰’의 적용 등은 조금 아쉽다. 그럼에도 이런 소소한 단점들이 인식되는 건, 『잔인한 축제』를 정신없이 읽고 나서 한참 뒤의 일일 것이다. 만화를 보는 동안엔 탄탄한 스토리와 아름다운 작화에 빠져 딴생각은 별로 들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결말에서 작가는 2편을 예고하는 작은 떡밥을 던진다. 만일 이 떡밥이 진짜 떡밥이라면, 위에서 언급했던 임부장의 캐릭터 묘사에 대한 아쉬움도 충분히 해소될 가능성이 있다. 댓글을 단 독자들의 바람대로 정말 시즌 2가 나올 수 있을까? 어쨌든 1편이 잘 돼야 2편이 나오는 거다. 다음 이야기를 꼭 그려달라는 의미로 우리도 만화가에게 결제와 응원 댓글이라는 떡밥을 던질 수 있다.

 

 

 희나리 작가의 『잔인한 축제 』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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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 소개

시 쓰고 개 키우고 연애합니다. 공부도 가끔. 밤 10시 장안동삼거리 Zoo Coffee에 앉아 있는 남자 중에 제일 추리한(?) 중년이 바로 접니다. 시집 『이 집에서 슬픔은 안 된다』 많이 읽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