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PD의 BDDB] #15 프랑스 만화의 또다른 변화 : 앨범에서 디지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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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온라인 만화 서점 ‘세퀑시티(Sequencity)’의 메인화면.

프랑스 온라인 만화 서점 ‘세퀑시티(Sequencity)’의 메인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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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오픈한 지 겨우 1년이 된 프랑스 온라인 만화 서점 ‘세퀑시티(Sequencity)’가 서비스 작품 수 10,000개 돌파를 알리며 프랑스 디지털 만화 서비스 시장에서 상당히 빠른 속도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세퀑시티’는 ‘오프라인 서점을 온라인으로’ 라는 테마를 가진 사이트다. 제휴 서점은 평소 오프라인 서점을 운영할 때와 마찬가지로 추천도서를 방문자에게 소개하고 독자는 원하는(혹은 평소 애용하던!) 서점을 직접 선택, 작품을 개별적으로 추천 받는 등 ‘나의 단골서점’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인의 소비문화를 반영한 서비스다. 디지털 만화가 시장에 안착한 데는 이런 노력이 있었다.

종이책 문화가 깊숙이 자리 잡은 프랑스의 특성을 보여주듯, 프랑스에서 디지털 만화 서비스라고 하면 지금 한국에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웹툰’ 즉 제작부터 유통까지 디지털화 된 만화 보다는 출판 만화를 스캔, 디지털화하여 서비스하는 것이 주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프랑스 권에서는 비교적 이른 시기였던 지난 2010년 문을 열어 시장의 주도권을 잡은 프랑스-벨기에 출판사 연합 디지털 만화 사이트, ‘이즈네오(Izeno)’나  국내에서도 꽤 알려진 미국 최대 디지털 만화 서비스 사이트이자 프랑스에서도 별도 운영되고 있는 ‘코믹솔로지(ComiXology)’가  위에 언급한 기존의 전형적인 디지털 만화 서비스라고 보면 된다. 대부분 타블렛 PC가 큰 인기를 끌며 붐업되던 시기 어플리케이션으로 서비스를 시작했거나 자리 잡은 곳들이다. 이 사이트들은 출판 원고를 기반으로 한 E북 서비스로, 유료로 서비스되고 있으며 일정 요금을 내고 무제한 작품을 볼 수 있는 정액권 등의 다양한 과금체계를 보유하고 있다.

기존의 디지털 만화 사이트들이 개념적으로 오프라인 책을 온라인으로 가져왔다는 것에서 그쳤다면 ‘세퀑시티’는 오프라인 책의 유통지인 서점까지 온라인으로 넘어온 형태다. 그럼 프랑스에서는 출판 만화를 스캔하여 서비스하는 형태만 존재하는가? 아니다. 만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두 번은 들어봤을 사이트델리툰(Delitoon)’의 경우  2012년 초창기 사이트 설립 당시 이미 디지털 만화 분야에서 꽤 발전, 성장하고 있던 한국의 웹툰 서비스 형태를 차용하여 사이트를 만들었고, ‘웹툰(Webtoon)’이라는 한국의 독자적인 표현 그대로를 사이트에 반영, ‘웹툰 시리즈(Séries Webtoon)’라는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소개했던 바스티앙 비베스(Bastien Vivès)의 신작 『라스트맨(Lastman)』 역시 이 사이트에서 스크롤 형태의 만화로 연재가 되고 있고, 연재 페이지의 전체적인 포맷 또한 한국의 웹툰 서비스와 상당히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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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툰에서 스크롤 방식 웹툰으로 연재 중인 바스티앙 비베스의 『라스트맨(Lastman)』.

델리툰에서 스크롤 방식 웹툰으로 연재 중인 바스티앙 비베스의 『라스트맨(Last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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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출판 만화 문화가 디지털 만화로 넘어오는 것은 우리 만화 시장이 그랬듯 지극히 당연한 변화다. 프랑스 만화책은 흔히 ‘앨범(Album)’이라 불리는 형태로 주로 제작, 판매되고 있는데 이는 보통 A4보다 큰 사이즈로 두께나 무게가 ‘휴대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타 문화권에서 흔히 만화가 스낵컬쳐, 오락성 짙은 콘텐츠로 인식되는 것과 달리 프랑스에서 ‘만화’란 하나의 예술장르, 문학의 한 장르로 인식된다. 작품과 만화책을 대하는 태도 또한 다르다. 그것이 만화책의 ‘사이즈’를 키우는데 큰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프랑스의 젊은 세대들은 ‘망가’에 열광한다. 전통적인 프랑스 만화에 비해 예술성이 지닌 무거움을 한결 가볍게 덜어냈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기술의 발달로 작품을 볼 때 누릴 수 있는 편의성, 휴대성 뿐 아니라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만화를 즐길 수 있다는 점, 출판된 종이의 질보다 더 나은 화질의 작품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스캔한 도서의 경우는 스캔의 질에 따라 다르겠지만), 규격화 된 판형의 경계가 무의미해지고 음향, 애니메이션 효과 등 다른 미디어의 결합이 용이해지면서 독자가 더 역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된 점 등 디지털 만화의 장점은 무궁무진하다. 프랑스도 이런 급격한 변화의 물결에 언제까지 두껍고 비싼 종이책을 고집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닐 것이다(분명, 종이책만이 선사할 수 있는 감동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야기는 논외로 두겠다).

물론 프랑스에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이 한국보다 늦게 진행되는 데에는 몇몇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가 기술적인 부분인데, 바로 인터넷의 속도 문제. 프랑스는 오래된 건물이 많아 초고속 통신망 설치가 쉽지 않고, 인터넷 서비스 요금이 다소 비싸게 측정되어 있어 모든 계층이 쉽고 빠르게 인터넷에 접근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프랑스에서 온전하게 스크롤 형태의 만화를 서비스하는 것은 어려웠다(델리툰의 경우 현재도 사이트를 자유롭게 방문, 작품을 즐기기에는 다소의 인내가 필요하다).이미지 페이지를 불러오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인내를 가지고 기다렸다 하더라도 중간 중간 이미지가 사라져버리거나(더 큰 문제는 작품을 처음 접할 경우, 중간에 이미지가 유실된 것을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다는 점!) 엑박이 뜨기가 일수였다. 그래서 스크롤 원고를 서비스하는 사이트의 경우 스크롤 방식의 원고와 컷 방식(한국의 ‘네이버 컷툰’ 같은 느낌) 원고를 병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문제는 사실 환경만 개선된다면 얼마든지 넘을 수 있는 한계다. 두 번째 결정적인 이유인, ‘뿌리깊이 자리 잡은 출판문화와 전통성’에 비하면 말이다.

만화 강국인 일본의 움직임과도 비슷한 부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미 출판 만화 시장을 통해 안정적으로 문화를 소비해나가고 있던 일본이나 프랑스의 경우 디지털 만화를 적극 활용해야 하는 절실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작품의 결과물 = 책 = 완성’ 이라는 사고가 깊이 자리 잡고 있어 상대적으로 디지털 만화에 대한 적극적인 소비나 니즈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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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벨기에 출판사 연합 디지털 만화 사이트, ‘이즈네오(Izeno)’. 오프라인에서 서적을 구매하는 것보다 저렴한 가격에, 편리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프랑스-벨기에 출판사 연합 디지털 만화 사이트, ‘이즈네오(Izeno)’. 오프라인에서 서적을 구매하는 것보다 저렴한 가격에, 편리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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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사이, 프랑스 출판 만화 시장도 서서히 하향세를 겪고 있고 인터넷 환경과 기술은 눈에 띄게 빠르게 발전하며 젊은 세대를 유혹하고 있다.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새롭고 매력적인 미디어를 원하는 프랑스의 새로운 문화소비계층. 그들의 눈높이를 좇아 프랑스 디지털 만화 시장도 급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 속에 국가 간 경계가 모호한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영역에서, 한국과 프랑스의 작가들이 한 플랫폼에서 동시 연재를 하고 작품으로 소통하는 글로벌 한 그 날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내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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