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해도 괜찮아 #16 『고기인간』

0

 

『고기인간』 - 모래인간(글)/ 하얀돌(그림) 지음, 레진코믹스, 프롤로그 포함 1부 36화(회차당 3코인)/ 2부(회차당 2코인) 연재 중 -

『고기인간』
– 모래인간(글)/ 하얀돌(그림) 지음, 레진코믹스, 프롤로그 포함 1부 36화(회차당 3코인)/ 2부(회차당 2코인) 연재 중 –

 

 

 

“우리는 멸종되지 않을 것이다.”

인류가 종말을 향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남은 시간은 50년. 인류 생존을 책임진 소수의 과학자들은 분노와 비난 속에서 선택된 인간을 먼 미래로 보내는 방주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그렇게 태초 이래 가장 완벽한 한 쌍의 초인(超人) 시가우와 미노아가 태어난다. 반면 나머지는 50년 후의 소멸을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방주 프로젝트를 위해 10년이 줄어든 것도 모른 채. 하지만 그 가운데 미래의 비형평성에 의문을 제기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불운의 천재과학자 하무사다.

인류 종말을 다룬 SF물 『고기인간』은 세 명의 주인공을 중심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1부는 방주 프로젝트라는 예고된 클로징을 향해 폭주하듯 달려간다. 마치 설국열차처럼. ‘천사’로 불리며 사람 목숨을 구하는 시가우와 미노아도 17세 사춘기 소년소녀의 방황을 피해가진 못한다. 인류 생존이라는 무거운 숙명에 저항하고, 점지된 사랑을 뒤틀기 위해 위장된 사건을 연출한다. 그 가운데 하무사가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고 궤도는 미묘하게 뒤틀린다.

 

 

시가우와 미노아, 그리고 방주 프로젝트의 슬로건(좌), 하무사와 둘의 재회(우)

시가우와 미노아, 그리고 방주 프로젝트의 슬로건(좌), 하무사와 둘의 재회(우)

 

 

‘충분한’ 파멸과 ‘적당한’ 생존 사이

주제는 무겁고 인물은 진중하다. 『고기인간』은 인류를 미래로 쏘아 올리기 위해 유전자공학, 인공지능 등 숨막히는 과학기술을 총동원한다. 곳곳에 설명충이 바글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난해한 세계다. 하지만 작가는 독자의 흥미를 기술이나 상황설명으로 조각내지 않는다. 과학과 미래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그저 그림으로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는 인물과 사건에 집중한다. 글과 그림의 쿨한 간격, 여기서 스타일리쉬한 SF물 『고기인간』이 탄생한다.

작화는 패션일러스트처럼 인물과 미래 세계를 시원하게 그려낸다. 과학자들은 마치 캣워크를 구사하듯 길쭉길쭉 걷고, 실험실을 비롯한 장소들은 종이로 만든 세트장처럼 부서질 듯 심플하고 아름답다.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직관적인 그림들이 의심의 여지없이 주인공과 독자들을 100년 후의 세계로 인도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암시는 톤 다운된 색감들로 표현된다. 실험실에 갇힌 황혼기의 인류는 힘없이 사그라지는 빛처럼 생기가 없다. SF 만화에 사용하기에는 선과 색 모두가 호사스럽고 우아하다.

이야기를 밀어붙이는 건 인물의 대사다. 때로는 그리스 희곡 같은 독백이 튀어나올 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짧고 가볍다. 상황에 끌려가는 법도 거의 없다. 툭 내뱉는 말은 상대의 글로브에 닿기 전에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다. 마치 아다치 미츠루의 언어처럼. 그래서 묵시록의 비장함 한 가운데에서도 뜻밖의 상쾌함이 있다. 과연 이야기는 끝에 닿을 수 있을까 싶지만 인물의 시선이 길고 깊어 걱정스럽진 않다. 그만큼 글(모래인간)과 그림(하얀돌)의 역할분담과 호흡이 환상적이다.

두 작가가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방식도 소소한 즐거움이다. 매 화 클로징에 캐릭터 설정을 할당, 캐릭터의 성격이나 습관을 힌트처럼 소개한다. 지면상의 분량 제약을 별책부록 기법으로 우회돌파 하는 셈인데, 이야기의 속도감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인물의 디테일을 살리는 아주 영리한 전법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상황 설명에서는 ‘충분’과 ‘적당’ 사이의 만화적 기법으로 아주 교묘하게 따돌린다. 그 방식이 어찌나 절묘한지 천재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위)『고기인간』이 과학을 대하는 남다른 방식 (아래)인물의 호감도를 높이고 무거운 주제를 누그러뜨리는 캐릭터 설정

(위)『고기인간』이 과학을 대하는 남다른 방식
(아래)인물의 호감도를 높이고 무거운 주제를 누그러뜨리는 캐릭터 설정

 

 

“미래에 가지 않는 우리들은 어떻게 되나요?”

우여곡절 끝에 인류는 미래로 간다. 다만 추진체 하나를 잃은 우주선처럼 미완의 형태로 도착한다. 파란 하늘 아래 홀로 남겨진 미노아와 인공지능 컴퓨터 모나모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생태계의 변화를 목격한다. 그 첫 번째는 동식물의 변화이다. 뱀이 하늘을 날고, 토끼가 육식을 한다.

인류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인간은 어떤 유산을 이어가게 될까. 만물의 영장이었던 과거의 영광을 한 단계 끌어올릴 것인가, 아니면 만화 제목 그대로 무언가 잃어버린 ‘고기인간’을 양산해 내게 될까. 미스터리 같은 제목을 향한 도발적인 여정이 2부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다가도 작가는 중간 중간 딴청 피우며 능청스럽게 “사람은 뭐야?” 같은 근원적 질문을 툭 던진다. 물론 성실한 대답은 없다.

모범답안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1부였다면 2부는 뚝심 있게 100% 미지의 영역을 향해 밀고 나간다. 독자에겐 아무래도 상관없는 열린 결말일 수도 있겠지만, 미노아에겐 인류 생존이라는 사명을 달성하느냐 마느냐의 절체절명의 승부다. 그리고 어쩌면 이 모든 예상을 뛰어넘어 가장 근사치의 미래에 하무사가 먼저 도달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50화는 고기인간을 전면 등장시키며 이야기를 새로운 무대로 옮겼다. 이야기는 어디까지 달아날 수 있을까. 가능한 멀리,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줄을 끊고 날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우리에게도 말도 안 되는 걸작 SF 만화가 한 편 정도 있어도 되지 않을까.

 

 

 

공유하기

필진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