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PD의 BDDB] #17 그림으로(만) 말해요 : 유럽의 무성만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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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_heading size=”18″]미녀PD의 BDDB #17

그림으로(만) 말해요 : 유럽의 무성만화들 [/su_heading]

 

 

마크-엉토안 마티유(Marc-Antoine Mathieu), 『3초(3 secondes)』

마크-엉토안 마티유(Marc-Antoine Mathieu), 『3초(3 secondes)』

 

 

연속성 있는 그림과 글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것을 표현하는 수법을‘만화’라고 한다. 하지만 만화 중에는 일명 ‘무성만화’라 불리는 장르가 있다. 글 없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대사가 들어간 말풍선, 나레이션, 독백(모놀로그) 등이 없이 오직 그림으로만 구성된 만화를 말하는데 프랑스어로는 무성만화라는 단어 그대로‘벙드 데씨네 무에트(bande dessinée muette)’또는‘텍스트가 없는 만화’라는 의미로 ‘벙드 데씨네 썽 텍스트(bande dessinée sans texte)’라고 불린다. 무성만화의 역사를 전부 다루기는 무리가 있고 그 경계 또한 모호한 지점이 있기에 여기서는 현재 우리가 무성만화라고 일컫는 근대화 된 무성만화의 시대를 연 1975년부터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1975년은 현대적인 무성만화라 평가 받으며 이후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획기적인 작품, 바로 뫼비우스(Mœbius)의 『아르작(Arzach)』이 발표된 해이다. 이 작품은 보통 아이들이 보는 만화에서나 흔히 보았던, 대사 없는 만화를 어른을 위한 만화에 써도 주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무성만화의 타겟층을 넓힐 수 있었다는 점. 또한 글이 없는 것을 보완하기라도 할 심산이었는지 완벽하고도 놀라운 그림, 파격적인 컷 구성과 연출은 오히려 말풍선이 없어 더욱 자유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이 당돌한 작품의 파장은 무성만화를 대하는 독자들의 태도뿐만 아니라 프랑스를 넘어 전 세계 작가들의 작품 세계에도 영향을 미쳤기에『아르작』이 비록 유럽 최초의 무성만화는 아니지만, 현대적인 무성만화의 시작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레위스 트홍데임(Lewis Trondheim),  『새로운 포르노그라피(La Nouvelle Pornographie)』

레위스 트홍데임(Lewis Trondheim),
『새로운 포르노그라피(La Nouvelle Pornographie)』

 

1980년대부터 뫼비우스의 영향을 받은 많은 작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며(사실 무성만화라는 장르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 세계와 화풍에 영향을 받은 수많은 아티스트들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른을 대상으로 한 실험적인 무성만화 작품들이 속속 발표되었다. 1990년과 2000년대에 들어서는 작품이 단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앨범(온전한 한 권의 책)으로 선보이는 일이 활발해지며 무성만화 장르에서 의미 있는 성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프랑스 작가 ‘레위스 트홍데임(Lewis Trondheim – 국내에서는 루이스 트론데임 이라고도 불린다)’은 1995년 『파리(La Mouche)』, 1997년 『아니, 아니, 아니(Non, non, non)』, 2002년과 2005년『미스터 오(Mister O)』와『미스터 I(Mister I)』를 비롯, 기존의 만화적 표현 방식에서 벗어나 마치 연속적인 추상화처럼 그려낸 2003년 『파란색(Bleu)』,2006년 『새로운 포르노그라피(La Nouvelle Pornographie)』 등을 발표하며 무성만화의 확장을 시도했다. 당시 비주류 독립 출판계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90년대에 데뷔한 작가들 중 최초로 그 해 앙굴렘 페스티벌 영예의 대상을 수상했다. 2008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작가인‘숀 탠(Shaun Tan)’의 무성만화 『도착(The Arrival – 국내에 출판사 사계절을 통해 정식발간 됨)』이 프랑스 앙굴렘 페스티벌 최고의 앨범상을 수상하며 무성만화는 시장에서 입지를 굳히기 시작한다.

 

숀 탠(Shaun Tan), 『도착(The Arrival)』

숀 탠(Shaun Tan), 『도착(The Arrival)』

 

현재는 유럽만화 시장에서 꾸준히 무성만화를 발표하는 일련의 작가군이 있고, 무성만화 자체가 만화에서도 꽤 실험적인 장르에 속하기 때문인지 독특한 작품들과 작가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스크래치보드(Scratch board)기법을 사용하여 주로 공포나 스릴러 장르의 무성만화를 그리는 스위스 작가 ‘토마스 오트(Thomas Ott)’, 2000년대 데뷔해 개성 있는 그림체로 인상적인 무성만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는 프랑스 작가 ‘니콜라스 프레슬(Nicolas Presl)’, 국내에도 출간된 무성만화 『3초(3 secondes)』의 작가 ‘마크-엉토안 마티유(Marc-Antoine Mathieu)’역시 만화가 시각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성만화를 연구하는 작가 중에 한 명이다.

반대로 우리가 아는 만화라는 카테고리 안에 더 가까운 무성만화를 그리는 작가로는 프랑스 작가 ‘크리스토프 샤부테(Christophe Chabouté)’나‘그레고리 파나치오네(Grégory Panaccione)’를 꼽을 수 있다. 특히 파나치오네의 경우 이미 2010년 무성만화 『내 친구 토비(Toby mon ami)』, 2014년 『시합(Match)』등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고 『낡은 제철소(Les vieuxfourneaux)』로 2015 앙굴렘 독자상을 수상한 글 작가 ‘윌프리드 루파노(Wilfrid Lupano)’와 (#11 칼럼 참고) 함께 작업한 2014년 작『사랑의 바다(Un Océan d’amour)』가 발표와 동시에 인기를 얻으며 다수의 현지매체에서 올해의 만화로 선정되었다. 무성만화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작품성뿐만 아니라 대중성까지도 인정받으며 큰 주목을 받은 일대 사건이었다(국내에서도 근래 출판사 이숲을 통해 정식 출간되었다).

 

그레고리 파나치오네(Grégory Panaccione),  『내 친구 토비(Toby mon ami)』

그레고리 파나치오네(Grégory Panaccione),
『내 친구 토비(Toby mon ami)』

토마스 오트(Thomas Ott),  『막다른 길(DEAD END)』

토마스 오트(Thomas Ott),
『막다른 길(DEAD END)』

 

그림만으로 다른 나라, 다른 문화, 다른 언어권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성만화는 참 매력적인 장르다(무성만화의 장점 중 하나는 역시 많은 번역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작품을 빨리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또한 유럽 만화는 텍스트가 너무 많아 지루하고 어렵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무성만화는 상대적으로 가뿐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무더운 여름, 글에 지친 나에게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무성만화 한편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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