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해도 괜찮아#17 로맨스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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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는없다_본문

『로맨스는 없다』, 이우인, 레진코믹스

매월 4, 14, 24일 연재 / 55화 연재 중(회당 3코인) / 1화 무료 공개

 

최근 웹툰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약진한 장르를 꼽자면 단연 성인 만화와 ‘보이즈러브'(이하 ‘BL’)일 것이다. 특히 여성 독자를 타겟으로 하는 플랫폼이라면 BL 작품은 필수로 연재하고 있다. 그만큼 ‘대놓고’ 즐기는 독자들이 많아진 것이다.

 

소위 ‘여성향’이라고 불리는 BL 만화는 남성 간 연애와 사랑, 섹스를 다루지만 대부분 한쪽의 성별을 여성으로 치환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강한 판타지성을 띠고 있다. 성소수자의 사랑을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다루는 장르인 ‘퀴어’와는 다르다. 물론 아직 국내에서 그 정도의 섬세한 분류를 기대하긴 어렵다.

 

레진코믹스에서 유료 연재 중인 『로맨스는 없다』는 BL과 퀴어의 중간에 위치하는 작품이다. 작가 이우인 역시 게이로, 허핑턴 포스트에서 성소수자의 일상 만화를 연재한 바 있다.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우리에게도 두근거리는 설레임이 있었다”며 “닫힌 벽장 속에서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다”고 밝힌다. 그렇다. 이 만화는 여성독자들의 판타지가 아니라, 게이가 주체가 되어 겪고, 느끼고, 상상했던 판타지를 그린다.

 

게이들도 꿈꾼다. 직장 상사, 외국인, 수리기사 등과의 짜릿한 섹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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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는 없다』는 옴니버스식 에피소드들로 구성돼 있다. ‘로맨스는 없다’고 하지만 에피소드는 모두 로맨틱하다. 지지부진하고 소모적인 ‘삽질’이 없을 뿐이다. 각 에피소드의 화자는 육상부에서, 군대에서, 여행지에서 만난 이를 거리낌 없이 탐닉하고 헤어진다. 이성애자들처럼 느긋하게 상대를 탐색할 수 있는 자유가 없기 때문일까?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롯이 ‘현재’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사랑의 파도에 몸을 맡기려면 찰나의 시간,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는 감정에 집중해야 한다. 순정만화를 그렸던 작가답게, 이우인은 2~3화 정도밖에 안 되는 분량 안에서 짧게 치고 빠지는 육욕의 기승전결을 섬세히 납득시킨다.

 

『로맨스는 없다』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타가메 겐고로’나 ‘멘타이코’ 등 많은 게이 성애물처럼 근육질 체형이지만 상대적으로 덜 과장되어 있다. 덕분에 주변 게이들은 작가에게 “(작품 속) 남성들이 너무 곱상하다”고 불평한다. 작가는 성소수자 웹진 『친구사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지적에 대해 “여성 독자의 수요를 무시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게이 성애물 특유의 과장된 남체는 그 완벽함 만큼이나 완강하게 여성 혹은 일반 독자를 밀어내기 때문이다. 적당히 술과 담배에 젖어 살면서 적당히 운동도 겸한 듯한 이우인의 남체는 남성향 성인물에서 여주인공의 뱃살이 살짝 접힌 것을 볼 때 느끼는 강렬한 현장감을 선사한다.

 

게이 성애물의 대가 타가메 겐고로의 만화는 일부 게이들의 취향을 만족하는 비대한 육체가 특징이다.(좌) 반면 이우인의 남체는 적당히 근육잡힌 몸매에 살집이 덮여 있어 일반 독자들이 보기에 훨씬 편하다.(우)

게이 성애물의 대가 타가메 겐고로의 만화는 일부 게이들의 취향을 만족하는 비대한 육체가 특징이다.(좌) 반면 이우인의 남체는 적당히 근육잡힌 몸매에 살집이 덮여 있어 일반 독자들이 보기에 훨씬 편하다.(우)

 

『로맨스는 없다』에 포르노그래피만 있는 것은 아니다. 8~10화 『P살롱에서 만나요』는 배경이 1970년대다. 주인공은 광주 출신 대학생과 종로의 모 극장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다. 대학생은 고향으로 내려갔다가 연락이 두절된다. 직접적인 원인은 나오지 않지만,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광주 민주화 운동을 떠올린다. 주인공은 5~60대의 중년 남성이 되어 다시금 그를 그리워한다. 이 에피소드는 일반에 존재하는 게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종으로 횡으로 확장시킨다. 그들 역시 한국의 근현대사를 겪은 우리 국민이고, 그들에게도 노년이 찾아온다.

 

‘스탠다드’가 아니라 ‘마니악’한, 그래서 무지개처럼 다채로운 게이들의 속살은 언제쯤 들여다볼 수 있게 될까? 다행히 BL과 퀴어 사이에서 출발한 『로맨스는 없다』는 조금씩 자신의 좌표를 퀴어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듯하다. ‘BDSM’이 등장하는 등 소재가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로맨스는 없다』를 “워밍업 같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의 ‘본격 퀴어 웹툰’은 아직 시작하지 않은 셈이다. 코인은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

 

연재 초기 여리여리하고 미소년스러웠던 등장인물은(상) 뒤로 갈수록 건장해져, 이젠 중년 남성이 주연으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하)

연재 초기 여리여리하고 미소년스러웠던 등장인물은(상) 뒤로 갈수록 건장해져, 이젠 중년 남성이 주연으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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