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해도 괜찮아 #18 『송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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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_heading size=”18″]결제해도 괜찮아 #18 『송곳』

분명 하나 쯤은 뚫고 나온다[/su_heading]

 

 

 

『송곳』, 최규석 지음, 네이버웹툰 연재/(단행본)창비 펴냄. 3부 전회차 대여 1만원(7일간), 전회차 소장 1만7700원 / 단행본 3권 세트 3만3000원

『송곳』, 최규석 지음, 네이버웹툰 연재/(단행본)창비 펴냄. 3부 전회차 대여 1만원(7일간), 전회차 소장 1만7700원 / 단행본 3권 세트 3만3000원

 

정의를 세운다던 그 시절, 잔혹한 이야기

“…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 주었던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며 살아라.” …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 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 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2001년 12월 10일, 노무현 대통령의 제 16대 대통령 민주당 후보 국민경선 출마 수락연설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명연설이었다. 정치적 성향이 상반된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손을 잡으면서까지 겨우 쟁취한 김대중 제 15대 대통령과 헌정 사상 첫 번째 정권교체, 그 정권을 이어받은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를 합친 10년. 수구세력들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 거기서 다시 훌쩍, 10년이라는 세월이 더 흘렀다.

‘부당한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쟁취’했던 기억은, 아주 멀다.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삶을 맞이하는 건 여전히 요원한 바람이고 땀 흘려 일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일도 많아진 세상. 인격체가 아닌 장부상의 숫자로 인식되는 노동자들은 쉽게 잘려나가고,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아무리 세상을 향해 우리를 봐 달라 부당한 현실을 타개하자 연대하자 소리 높여봤자 퍼져나가는 대신 흩어져버린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굴뚝 위에서,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커다란 회사를 빙 두른 담장 아래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 『송곳』은 실제로 있었고 아직도 진행 중인 노동자의 이야기를 아주 긴 시간 동안 취재해 직접 퍼져나가지 않는 메시지의 확성기 역할을 자처했다. 아주 직접적으로 찌르고 들어와 불편하지만,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송곳』의 무대는 아이러니하게도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겠다던 노무현 대통령 집권 시기가 배경이 되었다. 까르푸, 홈에버 그 어떤 이름이든, 외국계 자본이 투입된 대형마트 노동자들이 계속되는 부당한 처우에 노조를 결성하고 지리한 투쟁 끝에 사측과 협상하기에 이른다.

 

『송곳』 중에서

『송곳』 중에서

 

환한 미소 뒤 노동자들의 현실을 보다

『송곳』에서 그 마트는 ‘푸르미’라는 예쁘장한 이름을 달고 등장한다. 프랑스에서 직접 날아온 실무진들이 사업을 관장하고 있다. IMF를 거치며 수많은 외벌이 가장이 구조조정의 희생양으로 돈을 벌어오지 못하자 경력 단절을 감수하고 전업주부로 살던 아내들이 마트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 돈 안 벌어도 생활에 전혀 지장 없는데 용돈이나 벌려고 나왔다”는 허세는 얼굴에 경련이 올 때까지 웃고 하지정맥류를 얻을 때까지 쉬지 못하고 서서 일하고 진상 고객들이 생떼를 부려도 따끔한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신체+감정노동 앞에 부끄러워지고 무의미해진다. 생계를 위해, 내 사업 일으키기 전에 뭐 하나 배워갈 것 없나 해서, 불안한 다른 기업보다 유연할 외국계 기업에 승진의 기회도 비교적 열려있어서, 여기 아니면 갈 곳 없어서, 여기나 저기나 어차피 매한가지라서…. 모두가 살기 위해서 일한다.

내 앞가림에 급급한 보통의 사람들이 어느 날 신의 계시라도 받아서 노조를 만들진 않는다. 푸르미 야채청과 팀의 과장인 ‘이수인’은 유년기와 사관생도 시절을 지나 지금까지 한결같이 ‘뻣뻣한’ 사람이었다. 타인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내외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 묻고 뭉개고 넘어가는 꼴은 절대 못 본다. 왕따가 익숙한가보다, 자조적인 웃음을 웃지만 바람가는 대로 휘어져 눕는 풀이 아닌, 단단하게 뿌리박고 버티는 나무 같은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팀 직원들을 모두 해고하라’는 상부의 지시에 반발한다. 아침에 손을 맞대며 파이팅을 외쳤는데. 그는 노조의 문을 두드리고, 싸울 줄도 모르면서 전투를 시작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수인의 앞에 떼인 돈 기가 막히게 받아주는 노무사 ‘구고신’이 등장하고, 푸르미 노조 조합원을 모으고, 실전에 대비해 법을 공부하며 전에 가깝지 못했던 사람들과 연대하기 시작한다.

 

『송곳』 중에서

『송곳』 중에서

 

진보 할 수 있다는 믿음,에 걸다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다음 한 발이 절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제 스스로도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 걸음 내딛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이수인은 구고신의 독백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한 사람이었다. 어디에 갖다놔도 조금은 이질적이고 서걱거리는 캐릭터. 공동의 목표가 생기니 사람들은 이런 캐릭터와도 빠르게 손을 잡을 것 같았지만, 투쟁은 시작하기도 전에 몇 번이나 박살날 위기를 맞는다. “싸는 건 프랑스식으로 싸놓고 치우는 건 코리안 스타일인” 경영진들의 오만한 태도, 그들에게 충성경쟁을 벌이며 제 몸보신을 무덤까지 싸들고 갈 중간 관리자들의 행패, 사측의 간교한 회유와 협박, 업무 상 직원들의 모든 불만이 노조에게 향하도록 일부 직장폐쇄 행동 등. 연대하기는 너무 어려운 반면 분열과 배신은 마치 엄마 뱃속에서 배워서 나온 것처럼 쉽게 일어났다. 구고신은 지겹도록 목격해 왔던 모습에 결코 넌덜머리내거나, 먼저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이수인과 노조의 주축이 되는 조합 사무장 등 몇몇도 마찬가지다. 본격적으로 싸움은 시작하지도 않았다.

최규석 작가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보다 힘든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더 확고하게 ‘진보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걸 이해하기 굉장히 힘들었다.”고 취재 후기를 밝힌 바 있다. 취재원들의 이해하기 어려웠던 마음이, 이수인의 명대사인 “저는.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습니다.”로 치환되었던 걸까.

어쨌든 이 이야기의 끝은, 『송곳』연재를 오매불망 기다릴 필요도 없이 뉴스를 검색해보면 된다. 작가가 정해놓은 엔딩이 어디까지일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건 『송곳』으로 인해 노동운동이란 것이 대중문화에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갈 구멍이 생겼다는 것이다. 사회 속의 ‘송곳’들은 흔치 않지만, 분명히 있다.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그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일 계기를 만들어 주는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송곳』을 볼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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