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PD의 BDDB] #18《땡땡》과《스피후》, 세대를 넘은 매체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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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PD의 BDDB] #18

《땡땡》과《스피후》, 세대를 넘은 매체전쟁

 

 

20세기 중반 선의의 경쟁을 통해 프랑스-벨기에 만화 발전을 이끌었던 두 주간지가 있었다. 바로 에르제(Hergé, 본명 Georges Remi)의 대표작 『땡땡의 모험들(Les Aventures de Tintin)』을 연재하던 《르 쥬흐날 드 땡땡(Le journal de Tintin)》과 한국에는 에르제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역시 손꼽히는 벨기에 만화가 지제(Jijé, 본명 Joseph Gillain)를 필두로 한 《르 쥬흐날 드 스피후(Le journal de Spirou)》,우리말로 하자면 잡지 《땡땡》과 잡지 《스피후》였다. 두 잡지는 1950~60년 대 서로 다른 만화 미학과 화풍을 제시하며 각각의 유파를 형성할 정도로 활발히 경쟁했고 그에 영향을 받은 많은 작가들이 이를 계승해오면서 결과적으로 유럽 만화계에 굵직한 계보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잡지 《스피후》창간호와 잡지 《땡땡》 창간호

잡지 《스피후》창간호와 잡지 《땡땡》 창간호

 

 

 

우선 그들의 시작부터 한번 살펴보면 창간은 《스피후》가 빨랐다. 잡지 《스피후》는 1938년 ‘졍 두퓌(Jean Dupuis)’가 창간한 청소년 대상 만화잡지였다. 응?! Dupuis?! 그렇다.《스피후》는 현존하는 유럽의 대표적인 만화 출판사 중 하나인 ‘두퓌(Dupuis)’의 창립자인 그가 만든 잡지였다. 그리고 그는 여기서 같은 해 작품 『스피후와 풩타지오(Spirou et Fantasio)』를 선보인다. 초기 잡지의 거의 반 정도가 이 작품으로 채워질 만큼 잡지 《스피후》는 곧 작품 『스피후』라고 보아도 되었다. 졍 두퓌가 직접 작품의 글, 그림에 참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프랑스 작가 ‘홉-벨(Rob-Vel, 본명 Robert Velter)’에게 『스피후』의 작업을 의뢰하였고 홉-벨의 부인 ‘블렁쉬 뒤물랑(Blanche Dumoulin)’이 시나리오를 맡으며 시리즈는 시작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홉-벨이 작품을 이어갈 수 없게 되자 ‘지제’가 시리즈를 이어받았고 『스피후와 풩타지오』는 현재까지 10명이 넘는 작가를 거치며 거의 80년의 세월 동안 시리즈 유지 중이다. 이 작품은 『땡땡의 모험』 『아스테릭스(Astérix)』와 더불어 프랑스-벨기에 만화를 대표하는 명작으로 꼽힌다. 게다가 놀랍게도 《스피후》 역시 반세기가 훌쩍 넘은 오늘날까지도 계속 발간되고 있다!

 

 

(왼쪽) 『스피후와 풩타지오』의 최근 54번째 정식 시리즈. 2014년 작 ‘Le groom de Sniper Alley’편 (오른쪽) 잡지 《스피후》의 2015년 9월 2일자 최근호. 무려 No. 4038

(왼쪽) 『스피후와 풩타지오』의 최근 54번째 정식 시리즈. 2014년 작 ‘Le groom de Sniper Alley’편
(오른쪽) 잡지 《스피후》의 2015년 9월 2일자 최근호. 무려 No. 4038

 

그렇게《스피후》의 역사가 계속되던 1946년. 잡지《땡땡》이 등장하며 순식간에 당대의 경쟁매체로 자리 잡는다. 《땡땡》은 비록 후발주자였지만 1929년부터 시작된 에르제의 『땡땡의 모험들』의 어마어마한 인기에 힘입어 창간과 동시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잡지《땡땡》의 창간은 작가 에르제가 주도한 것은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재처가 마땅치 않아진 그에게 창간과 연재 제안이 온 것이다. 만화 주간지《땡땡》을 발행하기 위해 출판사 ‘르 롬바드(Le Lombard)’를 설립했으며 『땡땡의 모험』이 연재되는 (14번째 시리즈 ‘태양의 신전(Le Temple du Soleil)’부터 여기서 연재되었다.) 잡지 《땡땡》을 발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피후》와 《땡땡》 각각의 잡지에 잡지 제호와 같은 작품이 중점적으로 연재되었고, 이들 각각에 영향을 받은 신진 작가들(혹은 각각의 작가와 함께 일하는 후배, 동료 작가들)이 모여들어 원고를 투고, 연재 했다. 자연스럽게 두 잡지는 각각의 유파를 형성하게 된다.

 

『티프와 통뒤(Tif et Tondu)』 『불과 빌(Boule et Bill)』『갸스통(Gaston)』

『티프와 통뒤(Tif et Tondu)』 『불과 빌(Boule et Bill)』『갸스통(Gaston)』

『스머프(Les Schtroumpfs)』『루키 루크(Lucky Luke)』등 잡지 《스피후》의 대표 작품들. 국내에는《땡땡》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으나 우리가 아는 유럽 만화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대부분 이 잡지를 통해 연재되었다.

『스머프(Les Schtroumpfs)』『루키 루크(Lucky Luke)』등 잡지 《스피후》의 대표 작품들. 국내에는《땡땡》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으나 우리가 아는 유럽 만화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대부분 이 잡지를 통해 연재되었다.

 

《스피후》사무실이 벨기에의 한 지방 도시인 막씨넬(Marcinelle)에서 시작하였기 때문에 《스피후》를 중심으로 형성된 유파를 ‘막씨넬 유파(L’école de Marcinelle)’라 불렀으며 《땡땡》 은 벨기에 수도인 브뤼셀(Bruxelle)에 출판사가 있었기 때문에 일명 ‘브뤼셀 유파(L’école de Bruxelles)’로 불렀다. 둘은 각기 다른 화풍과 작품 세계를 추구하였는데 『땡땡의 모험』의 경우 ‘린 끌레흐(Ligne Claire)’, 일명 땡땡 스타일(Style Tintin)이라고 불렸던 기법을 고수했다. 대상을 표현할 때 선을 여러 번 그어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의 뚜렷한 선으로 외곽선을 그리고 컬러는 단색으로 채워 명확하게 표현하며 인물의 비율, 배경, 사물 등을 현실에 가깝게 정밀하게 묘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스피후’의 경우 ‘린 솜브르(Ligne Sombre)’, 일명 아톰 스타일(Style Atome, 우리가 아는 일본의 그 ‘아톰’이 아니다! 아토미움(Atomium)의 줄임말이다.)이라고 하여 말풍선은 동그랗게(네모에 가까운 《땡땡》과 달리), 인물은 비현실적으로 비율을 과장되게, 코를 크게 그리는 것을 주 특징으로 삼았다. 다소 아카데믹하고 다큐멘터리적인 만화를 추구했던 ‘브뤼셀 유파’와 달리 ‘막씨넬 유파’는 대사가 적고, 유쾌하고 즐거운 코믹 만화를 추구하였다.

 

 《땡땡》과 《스피후》의 비교 컷

《땡땡》과 《스피후》의 비교 컷

 

두 매체의 경쟁은 서로 작가를 공유하지 않을 만큼 치열했는데(즉, 《땡땡》에서 연재하는 작가는 《스피후》에서 연재할 수 없었고,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1955년 벨기에 작가로 《스피후》에 연재하고 있던 작가 엉드레 프렁캰(André Franquin)이 출판사와 다툰 후 잡지 《땡땡》과 5년짜리 연재 계약을 맺게 되면서 ‘두퓌’와 화해한 후에도 계약을 일부 이행 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러 그들의 암묵적 룰이 깨지게 된다(이를 계기로 두 잡지를 오가는 작가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생겨나게 되었다!). ‘린 끌레흐’의 대표 작가는 에르제, 에드가 피. 자콥스(Edgar P. Jacobs), 자크 막땅(Jacques Martin) 등을 꼽을 수 있고, ‘린 솜브르’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지제, 엉드레 프렁캰, 모리스(Morris), 윌(Will), 알베르 우데르조(Albert Uderzo)등을 들 수 있다.

두 잡지의 선의의 경쟁은 다행히 프랑스-벨기에 만화가 발전하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렀고(이들의 경쟁은 잡지 《땡땡》이 폐간될 때인 1988년까지 계속되었다 보아도 무방하다) 이 붐을 타고 1959년에 창간된 잡지 《필로트(Pilot)》는 더 큰 영향력을 끼치며 유럽 만화의 전성기를 이끈다. 1970년대 이후부터는 청소년 대상의 만화에서 벗어나 어른을 위한 만화를 추구하는 《하라-키리(Hara-Kiri)》 《메탈 위흘렁(Métal Hurlant)》 《아 쉬브르(À suivre)》 등의 새로운 경향의 만화 잡지들이(지난 칼럼 #02 참고)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유럽 만화는 또 한 번 변혁의 과정을 겪었다. 하지만 변화 속에서도 지금도 많은 작가들이 이 두 스타일을 계승해 나가고 있고, 이제는 고전이 된 작품들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이어가거나 그들만의 새로운 작품들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덧붙여 : 이번 칼럼에서 개인적으로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창간 80년이 다 된 오늘까지 계속 발행되고 있는 《스피후》다. 주간지에서 월간지로의 변경도 없었다. 잡지 《스피후》와 함께 지금도 발표되는 작품 『스피후와 풩타지오』.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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