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물건을 위해 죽을 수 있는가?! : 『효게모노』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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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게모노』 1-6 야마다 요시히로 Yoshihiro Yamada 지음, 애니북스 펴냄, 각권8,000원

『효게모노』 1-6
야마다 요시히로 Yoshihiro Yamada 지음, 애니북스 펴냄, 각권8,000원

 

 

 

“끝내 주는군. 이것이 왜 좋은지 아는 나의 눈을 칭찬해 주고 싶다. ‘샤르륵’하고 껄끔거리는 피부 좀 보게……

‘허세 따위는 없다’는 듯 간소하구나!!”

 

–『효게모노』 5권 중에서, 후루타 사스케의 말

 

 

너는 물건을 위해 죽을 수 있는가?!

34살 무인, 후루타 사스케는 오나 노부나가의 전령으로 적장에게 항복을 권유하러 혈혈단신 적진에 들어간다. 항복의 증표, 희귀 다관(茶罐)‘히라구모’를 가져오는 것. 하지만 적장은 차 내리는 도구에 불과한 그것이 자신의 영혼이라며 완강히 맞선다. 히라구모를 본 사스케도 적장이 뭐라 하건 넋을 잃고 그것만을 응시한다. 그 시각 원군이 들이 닥치고, 적장은 히라구모를 폭파시키며 자결하고 만다. 사스케가 끝내 건진 거라곤 히라구모 뚜껑 파편뿐. 얼기설기 붙인 우스꽝스러운 뚜껑 앞에서 노부나가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일본이 천하통일이라는 대업을 향해 질주했던 뜨거운 시기가 있었다. 이른바 전국시대(센고쿠 시대). 시대는 영웅을 갈망했고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희대의 세 영웅이 열도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여기, 두 걸음 뒤에서 세 명의 천하인을 모시면서 제 갈 길을 걸어간 괴짜 무인이 한 명 있다. 무인보다도 다도인으로 역사에 기억된 인물, ‘후루타 사스케(훗날 후루타 오리베)’. 만화가 야마다 요시히로는 그 ‘웃긴 녀석’(효게모노)의 눈으로 혼란한 전국시대를 관통한다. 군주에 대한 충성심은 잠시 어디 맡겨놓고 희귀 물건(명물)에 목숨을 건 진기한 풍류인들의 이야기가 난세의 속살을 드러낸다.

『효게모노』 이야기의 시작, 명물 다관(茶罐)‘히라구모’

『효게모노』 이야기의 시작, 명물 다관(茶罐)‘히라구모’

 

 

“풍류의 천하를 얻을 것이요!”

풍류인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소재는 여자, 술, 도박이 난무하는 19금 풍류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전국시대 예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다도(茶道)가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가 밍밍하고 따분하진 않다. 당시는 다도가 선(禪)의 형식으로 정착되기 전이고 새로운 정권에 ‘스타일’을 입히는 역할을 수행했던 만큼 상상력이 무궁무진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노부나가는 무력만큼이나 겉모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다도 명물은 물론 성까지도 극상의 호화찬란함을 추구한다. 행차 길에는 아랍 풍과 스트라이프 패턴 의상이 경쟁할 정도다. 작가는 포르투갈 등과의 교류를 통해 남만 문화를 적극 수용하던 당대의 풍취를 살려 갑옷은 물론 평상복에서도 각종 장식들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노부나가가 중간 중간 포르투갈어를 사용할 정도니 말 다했다.

전장과 가택을 가리지 않고 명물을 ‘낼름낼름’ 하던 사스케는 곧 덜미를 잡히고 만다. 그것도 노부나가의 다도 스승 센노소에키(훗날 센노리큐)에게. 사스케는 그의 업력에 압도되고 감화된 나머지 제자로 삼아줄 것을 자처한다. 센노소에키는 훗날 일본다도를 정립하는 고승으로, 다실을 축소하고 파격적인 검은 다기를 만들어내 독자적인 간소함을 추구한 인물. 그런 그에게 노부나가의 화려함이란 또 다른 난세를 부르는 과욕과 다를 바 없었다. 그 둘은 결국 충돌하고 만다. 소에키의 제자가 된 사스케는 무인에서 다도인으로 미묘한 궤도 변화가 일어나고, 그 변화 덕분에 노부나가 사후에도 히데요시에게 중용되어 다이묘(영주)까지 오르게 된다.

이후 사스케는 자신의 삶의 좌표를 풍류의 정점에 오르는 것으로 재설정한다. 그 첫 번째로 다도의 최고봉인 ‘다두’의 자리에 오르기로 결심한다. 히데요시가 연 ‘대 다회’에서 모든 상상력과 창의력을 동원해 간소함의 경지를 펼쳐보지만 돌아온 건 스승의 꾸지람뿐. 좌표를 잃은 사스케는 방황하고 그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재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일본이 독보적인 미의 기준을 자문하던 그 시기, 사스케는 자신이 세운 ‘오리베 십작(훗날 오리베야키)’를 통해 새로운 일본 도자기를 만드는 데 모든 것을 건다.

무인 사스케(좌)와 풍류인 사스케(우), 못났지만 사랑스러운 건 역시 속물 사스케

무인 사스케(좌)와 풍류인 사스케(우), 못났지만 사랑스러운 건 역시 속물 사스케

 

난세를 살아가는 어떤 가벼움

만화 『효게모노』는 개성파 인물로 가득하다. 일반 무협만화가 노부나가나 히데요시 같은 무인들에게 집중한다면 『효게모노』는 깃발 아래 나부끼는 명분 따위 비웃으며 물건 하나에 영혼을 쏟아 붙는 오타쿠같은 인물을 으뜸으로 친다. 사스케 동료인 타카야마 우콘은 히데요시의 기독교 금지령에 대해 “오랜 세월 길러온 남만 취향을 권세가의 한마디에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말하고는 종적을 감추는가 하면, 소에키의 사형 헤치칸 공은 “물건도 삶도 가벼워야만 하네.” 말하고는 모든 걸 불태우고 퇴장한다. 당대에는 입신양명의 길에서 벗어난 괴짜들이었지만 돌아보면 권세가에 굴복하지 않고 새 시대의 교양을 관철시킨 멋쟁이이자 의인들이었던 셈이다.

작가도 무대에 함께 오른다. 만화 각 챕터 제목을 노래 제목에서 따온 것. 1화의 제목 ‘너는 물건을 위해 죽을 수 있는가’는 스키 료타로의 노래 「너는 남을 위해 죽을 수 있는가」에서 빌린다. 이후로도 롤링 스톤즈(「검게 칠하라」, 「밤을 날려버려라」),레드 제플린(「천국으로 가는 계단」, 「환혹당해서」), Earth, Wind &Fire(「내일에 바치는 찬가」), 밥 딜런(「시대는 바뀐다」) 등에서 제목을 빌려와 멋스러우면서도 재치 있게 작품을 전개시켜 나간다. 그리고 단행본의 마지막 페이지에 한번 맞춰보기라도 해보라는 듯 원곡 리스트를 게재한다. 작가 나름의 풍류인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번역이 너무나 좋았다. 사스케가 명물과 대면할 때 『신의 물방울』처럼 첫인상을 묘사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맛이 기가 막힌다. 예를 들어 1권 ‘당물 웅천형 청색 찻잔’ 일화에서는 “마치 맑은 물이 ‘낼롱’하고 그릇으로 둔갑한 듯 산뜻한 담청색이 아름답구나!”라고 감탄하는데 요 ‘낼롱’이 음흉한 사스케 캐릭터와 착 들어맞아 맛깔났다. 단순 번역을 넘어 캐릭터에 맞는 한국적 표현을 찾아내기 위한 고심이 배어있어 좋았다. 5권까지는 김완 번역가, 6권부터는 주원일 번역가가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시대극에, 각종 문화재에, 개성파 캐릭터 열전에 번역이 만만치 않겠지만 부디 전권 국내 정식 발행되기를 소망한다. 물욕 쩌는 사스케의 기행의 끝도 궁금하지만 또 다른 난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원한 웃음이 간절하니까.

2011년 NHK에서 방영한『효게모노』 애니메이션, 놓칠 수 없다!!

2011년 NHK에서 방영한『효게모노』 애니메이션, 놓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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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1. 제목에 이끌려서 왔더니, 어디서 본것 같은 주인공이었습니다. 내용을 읽어보았더니, 옛날 읽었던 만화책. 반가운 마음에 글을 남깁니다.^^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잊고 있던 추억을 떠올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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