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해도 괜찮아] #20 『단지』 | 에이코믹스

[결제해도 괜찮아] #20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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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단지, 너와 나의 이야기 『단지』

 

『단지』  글/그림: 단지, 레진코믹스 수요웹툰

『단지』
글/그림: 단지, 레진코믹스 수요웹툰/ 총 30회차

 

 

“음… 너 말야. 어때? 괜찮아? 볼만해? 위로받고… 있어?” – 『단지』 중에서

 

‘단지, 31세, 분가 10개월 째. 맘 편히 싱글라이프를 즐기는 중.’ 『단지』의 시작은 평온하다. 여유 있게 커피 한 잔을 내려 편한 자세로 앉은 그녀의 이름은 ‘단지’. 부모형제와 함께 부대끼며 살다가 때가 되었다 싶었을 때 생활과 작업이 둘 다 가능한 공간으로 독립했다. 귀여운 단지의 캐릭터에 마음이 동하려는 다음 순간, 작가 ‘단지’는 이제부터 굽이굽이 펼쳐 보일 묵직한 이야기의 서두를 꺼낸다.

작품의 제목과 작가의 이름, 주인공의 이름이 모두 똑같이 ‘단지’인 것은 “이것은 (실제)나의 이야기”임을 강렬하게 어필한다. 맞다. 이미 몇몇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이 작품이 자전적인 것임을 말했다. 주인공이자 작가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아가면서 하나 둘, 차근차근 그녀의 가족사가 공개된다.

2남 1녀 중 둘째, 그리고 딸인 단지는 기억이 흐릿할 만큼 오래전부터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 가족에게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겪었다. 가부장적이며 ‘셀프효도’와는 거리가 먼 아빠, 아들과 차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단지를 자신의 감정 쓰레기통 정도로 치부한 엄마, 자존감이 꺾일 정도로 무시하고 괴롭혔던 오빠와 ‘누나’였기에 무조건적인 양보를 강요당해야 했던 원인인 남동생. 이 다섯 식구는 다른 지역, 다른 집, 다른 구성의 가족들에서도 왠지 하나씩은 있을 것 같은 캐릭터들의 모임이다. 단지는 동생이어서, 누나여서, 여자여서 그들이 나을 틈도 주지 않고 할퀸 상처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도 모른 체 시간을 흘려보낸다. 에피소드는 소위 말하는 어르신들이 ‘원래 다들 그러고 사는 것’이라 뭉개어 표현할만한 것들이다. 넓은 식탁 위에 놓인 반찬은 반드시 오빠와 남동생에게 가까이 놓는 것. 2차 성징이 시작된 딸의 가슴을 아무렇지 않게 만진 것. 남자 형제들이 집에 있음에도 집안일은 외출 중인 딸을 불러들여 시킨 것. 그녀의 울먹임을 하찮은 것으로 넘겨버린 것. 부모의 불화의 원인과 그것이 자신의 형제들의 인격형성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도 단지는 마치 친구에게 자기 일을 털어놓듯 아주 가까이 다가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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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는 연재 초반부터 다각도로 주목을 받았다. 성인 여성의 일상툰인 줄 알았는데 여성이기에 겪었던 지난한 가정폭력의 고발이다, 볼수록 스트레스 받는 작품이다, 왜 이런 걸 굳이 웹툰으로 그렸나, 나도 저런 경험 있다 등등 반응은 다양했다. 작가 ‘단지’는 마이크를 들고 직접 피드백 하는 대신 10화와 11화에 걸쳐 (이제껏 단지가 했던 것처럼)왜 괴로운 만화를 그리게 되었는지, 여기서 사람들이 무엇을 구하면 좋을지 보여준다. 상처 주는 부모를 싫어하면서도 동시에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 치료할 방법도 없이 상처를 혼자 삭이고 괴로워 이불 속에서 소리죽여 흐느꼈던 수많은 밤들을 넘어 어떻게 『단지』에까지 이르렀는지 보여준다. 어느 날 우연히 들어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난 수많은 ‘단지’들의 사연과 그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았고, TV 프로그램에서 한 남성이 당한 유년기의 차별과 가정폭력이 성인이 된 그의 삶과 정신을 여전히 좀먹고 있는 케이스를 보았다. 『단지』는 아주 개인적인 일의 고백이지만 여기에 공감하고 위로 받은 모든 사람이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남의 불행에서 위로를 받다니, 저급한 일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상처 입은 나를 끌어안고 있는 수많은 ‘단지’들에게는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와 함께 다음 한 걸음을 내딛게 하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

 

현재 유료 회차 기준으로 한 시즌을 마친 『단지』는 자기고백의 영역을 벗어나 독자들의 사연을 받아 새로운 시즌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내 안에 산적한 문제들을 들춰내는 데서 멈추지 않고, 다수의 이해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해결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세상의 단지들에게 단지가 소리 내어 말한다. 가는 길에 다시 마음을 다쳐 울더라도, 결코 전처럼 고립되지는 않을 거라고. 그러니 하자, 찾자고. 아직 『단지』를 만나지 못한 남자와 여자 아이와 어른 ‘단지’들이 이 작품을 꼭 만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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