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이상무와 독고탁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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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무 특집 특성화

다시 한 번 이상무와 독고탁을 추억하며

–  작은 거인 독고탁, 희망을 던지다 –

 

이상무 작가의 ‘독고탁’은 한국 만화가 낳은 가장 유명한 캐릭터 가운데 하나이다. 만화가 ‘이상무’를 모르는 대중은 있어도, 그의 캐릭터 독고탁의 이름을 낯설어하는 독자는 드물다. 작품마다 조금씩 다르게 그려지긴 하지만, 독고탁이라는 캐릭터는 대체로 반항적인 말투와 저돌적인 성격, 불우한 환경 등의 특징을 공유한다. 독고탁은 70년대초 『주근깨』라는 만화에 처음 등장한다.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독특한 이름, 깔끔한 선으로 그려진 동글동글한 외형, 인물들이 툭툭 내뱉는 직설적이면서도 감수성 짙은 대사들. 독자들은 금세 독고탁이라는 캐릭터와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이상무의 캐릭터는 당대를 사는 서민들과 닮아 있었다. 역경 속에서도 끝내 자신의 꿈과 의지를 관철하는 주인공 탁, 때로는 선의의 라이벌로 때로는 동료로 탁의 곁을 지켜주는 우직한 성격의 봉구, 밝고 명랑한 성격과 따뜻한 마음을 지닌 슬기 등은 70, 80년대 독자들이 친근하게 느끼는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형상화한다.

 

 『달려라 꼴찌』의 독고탁. 많은 이들의 우상이며 친구였다.

『달려라 꼴찌』의 독고탁. 많은 이들의 우상이며 친구였다.

 

우리는 이상무 작가를 야구만화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는 야구 외에도 여러 다양한 소재를 만화로 그려냈다. 『탱크』, 『부활』, 『야수의 링』을 포함하여 다수의 권투만화가 있고, 『울지 않는 소년』은 축구라는 소재를 현실적으로 다루어 큰 호응을 얻었다. 이외에도 우리의 일상과 역사가 모두 이상무 만화의 소재였다. 가난, 연애, 결혼, 가족 간의 사랑과 불화는 물론 일제 식민지 시대의 삶도 만화 속에 담겼으며, 『사랑의 낙원』에서는 SF소재도 등장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짧고 동그랗게 깎은 스포츠머리에 야구모자를 눌러 쓴 독고탁을 먼저 떠올린다. 유독 발이 빠르고, 날랜 수비를 펼치며, 기상천외한 마구로 상대 타자를 농락하는 독고탁 말이다. 독고탁의 이런 이미지는 이상무의 대표작 『달려라 꼴찌』에서 정점을 찍는다. 『달려라 꼴찌』는 잡지 『소년중앙』의 별책부록으로 82년부터 연재되어 인기를 누렸고, 현재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의하여 전 6권으로 복간되었다. 야구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독고탁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드라이브 볼과 더스트 볼로 고교야구와 프로야구계를 평정하는 내용이다. 특히 이 만화는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창단과 더불어 더욱 큰 인기를 끌었다. 『달려라 꼴찌』 외에도 『개살구』, 『아홉 개의 빨간 모자』(그라운드의 빨간 모자) 등의 야구만화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소년만화의 전형성을 벗어나다

이상무는 보통 ‘스포츠’와 ‘가족사’를 주제로 한 소년만화를 그렸으나, 기존 소년만화와는 다른 개성을 보여주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주인공 독고탁의 캐릭터이다. 과거 우리는 소년만화 남자 주인공이라면 으레 평균 이상의 외모, 올바른 윤리의식, 차분한 말투와 우수에 젖은 눈빛 등을 떠올렸다. 이상무의 캐릭터는 대체로 그러한 전형성의 반대편에 위치한다. 특히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은 만화에 등장하는 ‘독고탁’들은 대체로 개구쟁이에 반항적인 성격, 눈에 띄지 않는 외모를 가졌다. 인기 스포츠였던 야구, 축구, 권투 등을 소재로 한 수많은 만화 가운데 이상무의 독고탁이 등장하는 만화가 유독 독자의 공감과 사랑을 받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소년만화의 주인공들 독고탁처럼 어려운 가정환경에 처해 있었고,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방황했으며, 가족을 아끼고 보살피려 했다. 하지만 『달려라 꼴찌』, 『울지 않는 소년』 속 야구선수 독고탁 혹은 축구하는 독고탁처럼 방정맞고 능청스러운 캐릭터는 드물었다. 우수에 젖은 눈빛도, 훤칠한 외모도 가지지 못한 탁에게 독자들은 오히려 친근감을 느꼈다.

이상무는 결말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도 기존 소년만화의 공식을 비켜간다. 이상무 만화의 마무리는 쓸데없이 시간을 끌지 않는 편이다. 게다가 비극적 결말도 잦다. 예를 들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장편만화 『달려라 꼴찌』의 1부와 2부의 결말은 모두 느닷없어 보일 정도로 간결하다. 1부에서 탁과 슬기의 애정관계는 열린 결말에 가깝게 마무리되고, 독자에게 여운과 감동을 강요하기 위하여 확대 컷을 집중적으로 배치하거나 장면을 인위적으로 분할하는 일도 없다. 『아홉 개의 빨간 모자』의 간결하고 비극적인 마무리는 작가주의 영화의 결말과 유사하기까지 하다. 이 만화는 독고탁과 고아들로 구성된 ‘형제원’이 마지막 경기에서 패배하며 끝난다. 패배 직후 탁은 숙이(다른 만화 속의 ‘슬기’)네 집 담장을 넘어 마음을 전한 뒤 영영 사라져버리며, 슬기는 그러한 탁의 사랑과 야구에 대한 집념에 연민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만화의 마지막 장이 보여주는 것은, 경기 도중 공에 맞아 천치가 되어버린 동료 ‘땡보’의 모습과, 나무 아래 서서 탁이 남긴 야구공을 만지작거리는 숙이의 모습이다.

 

『아홉 개의 빨간 모자』의 간결하고 비극적인 마무리는 작가주의 영화의 결말과 유사하기까지 하다.

『아홉 개의 빨간 모자』의 간결하고 비극적인 마무리는 작가주의 영화의 결말과 유사하기까지 하다.

 

현실적 묘사가 주를 이루는 『아홉 개의 빨간 모자』를 제외하면, 사실 이상무의 여러 야구만화에 등장하는 마구나 도루 장면은 허무맹랑하다. 그럼에도 그의 판타지는 불우한 환경에 처한 인물들 간의 관계와 감정적 갈등을 치밀하고 현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리얼리티를 확보한다. 역동적인 움직임이 두드러지는 그림체는 아니지만, 섬세하고 여백 많은 이상무 작가의 그림선이 오히려 독고탁과 주변인물의 감수성을 잘 드러내주는 것이다.


늙지 않는 소년 이상무

90년대 이후 이상무는 골프만화 혹은 골프레슨 만화를 주로 그려왔다. 혹자는 이상무의 야구만화와 개구쟁이 독고탁을 여전히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대가 원하는 작품의 경향과 주제는 끊임없이 갱신된다. 만일 이상무가 영원히 야구하는 개구쟁이 독고탁만 그렸다면 오히려 그는 과거에 갇힌 작가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항상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해왔다. 그래서 그는 항상 소년으로, 영원히 우리들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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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 소개

시 쓰고 개 키우고 연애합니다. 공부도 가끔. 밤 10시 장안동삼거리 Zoo Coffee에 앉아 있는 남자 중에 제일 추리한(?) 중년이 바로 접니다. 시집 『이 집에서 슬픔은 안 된다』 많이 읽어 주세요.